1960년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이 처음 시작됐을 때, 이토록 오랜 생명과 권위를 과시할 것이라 예측한 사람은 어쩌면 소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해로써 반 백년에 그리 멀지 않은 45회를 맞이하게 되었다.국내에서 가장 권위가 있으며,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출판계와 문화계의 큰 잔치이기에 참으로 기쁜 일이다. 격동하는 현대사를 지내 온 한국사회에서는 매우 소중한 사례라고 하겠다. 이는 심사위원을 포함한 역대의 운영진이 항상 시대와 사회의 흐름에 적극 호응하였고, 나아가 이를 선도하고자 노력해온 결과일 것이다.
제44회에 시작된 심사절차와 과정 및 성격의 변화는 그러한 노력의 대표적인 예다. 종래의 본상은 학술서 중심으로 저작상의 성격이 강하였다. 그에 비해 새로운 시도에서는 학술 저술, 교양 저술, 번역, 편집, 어린이·청소년으로 분야를 나누고 예심과 본심의 심사위원을 달리 구성하였다. 그리고 이 변화와 혁신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기에, 심사위원으로 그 과정에 참여한 일은 나로서도 매우 기쁘고 자랑스러운 경험이었다.
변화와 혁신이 성공하게 되는 요체의 하나가 바로 지속성이다. 올해의 심사에도 그러한 개혁의 취지가 잘 드러나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극심한 출판 불황에서 신간 발행 종수가 격감했음에도 적극 참여한 출판인들의 성원,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를 통해 본상의 권위와 전통을 유지하고자 한 심사위원진의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가능하게 해 준 후원사의 성원과 한국일보의 배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출품작과 그 심사에서 나타난 올해 출판계의 흐름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난해에는 조선시대에 관한 훌륭한 업적이 많았다면, 올해에는 ‘근대’에 관한 관심이 두드러졌다. 이 관심은 한국만이 아닌 중국과 일본의 근대에 대한 관심으로도 나타났다. 둘째, 근대에 대한 관심은 다시 근대를 반성하고 극복하거나 나아가 진정한 근대화를 모색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셋째, 여성 노동자 소수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는 시도가 늘었다. 넷째, 한국의 전통과 그 문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시도가 돋보였다. 다섯째, 어려운 여건에서도 과학서의 출간이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여섯째, 넓은 의미의 편집 역량이 눈에 띄었다. 새로운 주제나 필자의 발굴은 물론 다양한 형식과 체제의 시도가 엿보였다. 끝으로 지난해에 비해 미술을 비롯한 예술분야의 서적이 미약하였다.
본심에서 특히 유념하였던 것은 우리시대에서 ‘독서’의 의미와 필요였다. 지식과 정보가 풍요를 넘어 심지어 과잉상태인 이 시대에, 영상과 오락이 무엇보다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이 시대에, 과연 ‘독서’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 것일까? 이러한 화두에 대한 진지한 논의 위에서 나온 결론은 우리사회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관점과 다양한 시각을 제공할 수 있는 책을 추천하자는 것이었다. 다행히 이념과 입장의 찬반과 호오(好惡)를 떠나서 우리 현실을 올바로 파악하고 미래를 적극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업적들을 선정할 수 있었다.
원칙의 공감과 일치가 순조로운 선정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심사위원들 사이에 열띤 토론도 적지 않았는데, 구체적인 예가 공동의 저자에게 돌아간 학술 저술상이며 두 종류를 선정한 어린이·청소년 분야이다. 전자는 학제적 연구의 필요성을, 후자는 어린이·청소년 분야의 중요성과 포괄성을 감안한 결과였다.
이동철 용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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