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가 범죄를 자백하고 서명한 검찰 신문조서도 법정에서 부인하면 증거능력이 없다는 대법원의 새 판례는 범죄에 관한 진실은 오로지 법정에서 가리는 공판중심주의를 구현하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피고인과 검찰이 대등한 공격·방어권을 갖고 법정 진술과 증거제시를 통해 유무죄를 다투도록, 재판 형태를 사법 선진국형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백에 의존하는 수사관행부터 바뀔 수밖에 없어 인권보호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오랜 관행에서 비롯된 우려도 적지 않지만, 사법 선진화를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공판중심주의는 이미 형사소송법이 원칙으로 삼고 있다. 재판에서 유죄가 확인되기 전에는 무죄로 추정하는 법 정신에 충실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 재판에서는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을 거의 그대로 인정하기 때문에 피고인은 애초 불리한 입장이다. 법정에서 조서 내용을 부인하더라도 가혹행위 등이 인정되지 않는 한 증거능력이 있다는 것이 기존 대법원 판례다. 자백이 여전히 최고의 증거로 행세한 바탕이다.
이런 현실을 판례 변경만으로 단숨에 개선할 수는 없다. 당장 검찰은 물증 확보가 어려운 뇌물 사건 등에서 피고인이 검찰 진술을 뒤집으면 혐의를 입증할 방도가 없다고 걱정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디오 촬영 등을 통해 조사과정의 적법성을 입증하면 별문제가 없다고 짐짓 의연한 자세다. 그러나 이는 공판중심주의의 큰 뜻을 제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검찰은 피고인과 동등한 조건에서 법정 공방으로 정의를 실현한다는 각오부터 다져야 한다. 인권 수사, 증거위주 수사에 한층 힘을 쏟아야 할 것은 물론이다. 법원도 재판 업무 증가에 대비하고, 검찰과 피고인 측이 나란히 앉도록 법정 구조를 바꾸는 등 공판중심주의 정착을 위한 제도 개선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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