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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293> 14·15대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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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293> 14·15대 대선

입력
2004.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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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2월18일 제14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그로부터 꼭 다섯 해 뒤인 1997년 12월18일에는 제15대 대선이 치러졌다. 이 두 차례 대선을 통해서, 1970년대 이래 제도권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차례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집권 기간에 한국 민주주의는 적어도 절차적 수준에서 크게 진전되었다.14대 대선의 승리자 김영삼은, 비록 13대 대선 패배 뒤 군사정권 세력과 손을 잡아 민주주의 진영으로부터 큰 비난을 받은 바 있지만, 집권 뒤 정치군부의 과감한 숙청을 통해 한국 정치의 문민화를 실질적으로 이뤄냈다. 김영삼 정권이 내걸었던 ‘문민정부'라는 구호는 결코 허울이 아니었다. 군부에 대한 민간 통제를 확고히 함으로써 군사쿠데타의 가능성을 거의 없애버린 것은 김영삼 정권이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는 업적이다. 거기에 더해, 김영삼 정부는 이전의 두 집권자 전두환과 노태우를 1979년 12월의 군사반란, 1980년 5월의 내란, 집권 기간 중의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해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원칙을 세웠다. 정치군부 숙청이나 전·노 재판이 차가운 정치공학의 일부분이었다 할지라도, 김영삼은 적어도 그 부분에서 자신의 사적 욕망과 역사의 공적 욕망을 포갤 수 있었던 지도자였다.

김대중은 15대 대선에서 승리함으로써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적인 여야 정권 교체를 이룩했다. 분단체제 해소에 오랜 관심을 가져온 지도자답게, 김대중은 재임 중 일관된 대북화해 정책을 추진해 남북 사이의 긴장을 크게 줄였고, 첫 남북정상회담의 한쪽 당사자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해방 뒤 반 세기 동안 한국 사회의 확고한 주류를 형성했던 극우냉전세력의 위세가 그의 집권기간 동안 사뭇 상대화되었고, 다양한 정치적·이념적 입장들이 경쟁할 수 있는 마당이 마련되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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