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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이웃은…] (2) 달동네의 스산한 세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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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이웃은…] (2) 달동네의 스산한 세밑

입력
2004.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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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 끝자락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104번지. 왕복 4차로 무수동길을 가다 현대아파트 단지를 지나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쓰러질 듯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행인 2명이 간신히 비켜갈 만한 골목길이 이리저리 헝클어져 있고, 군데군데 합판으로 엮은 판잣집이 눈에 띈다. 관악구 난곡마을이 철거된 뒤 서울에 남아있는 가장 큰 규모의 달동네다.마을 초입 구둣방에서 장기 훈수를 두다 나와 담배를 피워 문 주민 이모(47)씨는 살림살이를 묻자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얼마 전까지 섬유회사에 다니며 14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는데 경기불황으로 해고됐어요. 막노동을 하려고 새벽 노동시장에도 나가 봤지만 일감이 없어 벌써 3주째 헛걸음만 했답니다. 식당일을 하는 조선족 아내가 근근이 생활비를 벌어오지만 절반 정도 중국으로 보내고 나면 끼니를 걱정해야 할 처지예요. 20평짜리 전세 보증금 1,300만원이 전 재산인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이씨의 한숨을 뒤로하고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곳곳에 연탄재가 널려 있었고, 폐타이어로 눌러 놓은 슬레이트 지붕 위로 장대 끝에 매단 TV안테나가 삐죽 나와 있다. 1967년부터 중랑구, 강북구, 노원구 일대가 개발되면서 밀려온 주민들이 임시 거처로 사용하다 지금에 이르렀다. 중계본동 달동네는 총 1,673가구에 4,200여명이 살고 있다. 대부분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인 극빈가정이나 독거노인 등이 월세 10만원가량의 단칸방에서 추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재개발계획이 추진되고 있다지만 집주인의 80%가량은 외지인이어서 이들과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개발이 본격 시작되면 또다른 ‘달동네’를 만들어야 할 처지다.

"예년만 해도 막노동이나 노점상을 하는 주민들이 많았는데 일감도 없고 장사도 안되다 보니 요즈음은 그냥 집에 있으면서 구호품만 바라고 있지요. 200여명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정부 보조금으로 겨우 삶을 꾸려가고 있고, 전세입주자는 월세로 전환해 가면서 일단 이 겨울을 나자는 생각들입니다." 한 50대 가장의 말이다.

이 마을 주민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독거노인들은 연료비 마련이 가장 큰 걱정거리. ‘이씨 할머니 집’이라는 동네 사랑방이 있었다. 주위의 도움으로 연탄난로를 장만한 이모(71) 할머니가 동네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방을 열어 놓았다. 할머니는 얼마 전에 생긴 연탄은행으로부터 무료로 연탄을 얻어 쓰고 있다. "봄 날씨 같다고 말하지만 겨울은 겨울이지. 나는 복 받은 사람이야. 차디찬 골방에서 지내는 사람도 많아. 예전에는 쌀이나 라면 등은 간혹 들어왔는데 올해는 통 보이질 않아. 더 이상 남을 귀찮게 하기 싫어 하나님께 제발 빨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고 있지." 할머니의 말이 넋두리로만 들리지 않았다.

이 지역 독거노인에게 매일 무료 점심을 제공하는 ‘평화의 집’도 올해처럼 운영난을 겪기는 처음이다. 후원금이나 자원봉사자가 지난해에 비해 딱 절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반면 무료 점심에 의지하는 독거노인은 오히려 2배 가량 늘었다. 김모(62) 할머니는 "지난해까지 매월 40만원을 보내오던 자식들이 올들어 20만원으로 줄이는 바람에 전기비와 수돗세를 내고 나면 이 곳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며 "자식들도 오죽 힘들면 수년간 보내오던 용돈을 다 줄였겠느냐"고 말했다. 달동네 주민들의 겨울은 추위와 허기와의 전쟁이었다.

안형영기자 ahn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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