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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제45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어린이·청소년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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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제45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어린이·청소년부문

입력
2004.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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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청소년부문 '한국사 편지' 박은봉씨/ "딸에게 쓴 편지…실제 대화도 그대로""최근 어린이 역사책이 많아지고 있으나 지금부터가 시작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필자도 양적으로 늘었으면 하구요. ‘한국사 편지’가 그런 파동을 일으키는 자그마한 돌을 던졌다 할까요, 그 정도 역할이면 만족합니다."

박은봉(44)씨는 딸에게 읽혀줄 만한 역사책을 만들고자 했다. 5년 전 딸 세운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서점에 가보니 딸에게 믿고 읽힐만한 역사책이 없더군요. 문제는 ‘어린이책은 재미있고 쉬워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인지 필자들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이었어요. 역사적 오류도 수두룩했고요. 내가 직접 써 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한 박씨는 ‘세계사 100장면’ ‘한국사 100장면’ 같은 대중 역사서를 써왔던 만큼 자신도 있었다. 2001년부터 어린이잡지 ‘생각쟁이’에 기고를 시작했고, 이를 눈여겨본 출판사에서 제의가 들어왔다. 2002년 7월 첫 권을 낸 뒤 2년 6개월 여에 걸쳐 딸에게 우리 역사를 들려주는 편지를 썼다. "고쳐 쓰기도 여러차례 했고, 편집에도 공을 들였습니다. 삽화도 고증이 잘못된 점은 없는지 확인해야 했고, 사진설명도 또 하나의 읽을 거리이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썼죠."

책을 쓰는 내내 딸 세운과 친구들을 모니터 요원으로 동원했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다. 그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어느 정도까지 소화할 수 있는지 파악부터 하고 책을 쓰고, 초고를 쓰고 나면 딸에게 가장 먼저 읽혔다. 책 속에 실린 모녀의 대화는 모두 가상이 아니라, 실제 대화 내용을 옮긴 것이다. "역사는 이게 옳은 거야 하고 주입하는 방식에서 탈피하고, 동일한 인물, 사건을 보고도 해석과 평가를 달리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하고 싶었다"는 박씨는 아이들이 나름의 시각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정했다.

일제 이후 현대사를 다룬 마지막 권을 쓸 때가 가장 힘겨웠다. 여성단체 활동, 노동상담 등을 해온 그녀가 자신의 역사적 체험과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워지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에게 사회주의를 원고지 5, 6매 분량으로 설명하려니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일부러 감추어왔던 나머지 반쪽도 아이들이 알고 판단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엄마로부터 ‘한국사 편지’를 받은 행복한 딸 세운은 이제 중학교 2학년이 됐다. 역사를 자기 눈으로 볼 줄 아는 데서 기쁨을 찾는 딸을 보면서 "엄마로서 적어도 딸에게 ‘한국사 편지’가 창피하지는 않다"고 한다. "역량이 닿는 한 독자층을 넓혀가며 역사를 알리고 싶다"는 박씨는 후속작업으로 ‘한국사 오류사전’을 집필하고 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 심사평/ 주입식 역사 탈피… 생각하는 힘 키워

"역사는 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느끼고 생각하는 공부야"라고 저자는 본문에서 말한다. 문제는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내용을 전달하는가이다. 흥미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인지 내용보다 재미에 무게가 더 실린 만화로 된 어린이 역사책이 많은 가운데 ‘한국사 편지’는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을 취했고 그것은 성공적이다.

원시사회부터 노무현 정부 출범 이전까지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사건 인물 에피소드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설명하고, 쟁점이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기보다 아이들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방향만 제시한다.

또 사건이나 전해 오는 이야기, 문학작품의 이면에 숨은 뜻을 당시의 사회상과 역사적 맥락에 비추어 보여주어 역사를 보는 시각을 키우는데 역점을 두었다.

저자의 전문성과 더불어 아이들이 가질만한 질문과 그에 대한 엄마의 답이 옛날이야기처럼 술술 읽힐 정도로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글도 돋보인다. 다섯 권에 한국사 전체를 글과 그림, 사진으로 담은 저자와 편집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예심 통과작 중에서 ‘요리로 만나는 과학 교과서’는 일상에서 과학을 배운다는 접근은 좋았으나 한 해의 책으로 선정되기에는 약하다는 의견이었다. ‘우리곤충도감’ ‘우리식물도감’과 저술 교양부문에 출품됐던 ‘딱정벌레 왕국의 여행자’도 거론되었으나, 지식책의 기본인 ‘찾아보기’와 ‘용어해설’ 같은 참고정보가 미흡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강은슬 도서평론가

■ 어린이·청소년부문 ‘엄마 마중’ 김동성씨/"원작 숨은뜻 그림으로 표현"

200자 원고지로 2장이나 될까. 그림책의 글인 이태준의 동화는 그렇게 짧다. 이 짧은 글이 아름다운 그림책이 된 것은 그림작가 김동성(34·사진)의 상상력 덕분이다.

글이 말하지 않은 많은 이야기들을 그림 속에 풍성하게 숨겨 놨다. 추운 겨울날, 전차 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가의 마음을 따뜻한 눈길로 표현한 그의 그림은 보는 이의 콧날을 시큰하게 한다. "처음 원고를 받았을 때 글이 너무 짧아서 그림책으로 만들기가 참 힘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체적 상황묘사가 없고 등장인물의 성격도 전혀 드러나지 않아서 그림작가로서는 그만큼 해석의 여지가 많기도 하구요. 커다란 원석을 받아서 조각을 하는 것 같았다고 할까요. 당황스러운 한편 의욕도 느꼈죠."

이태준의 원작은 하염없는 기다림으로 우울하게 끝난다. 이야기가 끝난 지점에 말없이 이어지는 마지막 세 장의 그림, 연둣빛으로 포근하게 그린 눈 내리는 풍경은 전적으로 그림작가의 창작이다. 맨 끝 장면에는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가의 뒷모습이 보일듯말듯 들어있다. "좀 더 긍정적인 미래를 담고 싶어서 환상이나마 엄마랑 만나는 장면을 넣었어요. 하지만 독자에게 ‘이게 정답이야’ 하고 강요하는 듯한 작위적 연출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파묻힌 듯 작게 그렸습니다. 엄마를 기다리는 아가의 표정에 슬픔을 드러내지 않고 무심하게 표현한 것도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 그림책이 자아내는 긴 여운과 감동은 그림작가의 세심한 배려와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겠다. 많은 독자들이 이 그림책을 보고 ‘가슴이 찡하다’거나 ‘눈물이 핑 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더 깊이 생각했다. "단순히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은 나라 잃은 일제시대의 암울한 현실에 대한 시대의식과 비판정신을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림작가의 역할은 텍스트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을 건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담으면서 작가의 숨은 의도까지 전하려고 애를 썼는데, 참 힘들었어요. 그림책 작업의 어려움을 새삼 실감했죠."

그는 어린이책 출판사마다 함께 작업하고 싶어하는 인기 그림작가다. 하지만 그 자신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으로 비로소 그림책 작가가 되기 위한 과정에 조심스레 한 발 내딛은 것 같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늘 긴장감을 갖고 자기발전을 위해 모험을 계속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사진=배우한 기자

■ 심사평/ ‘깊은 울림’ 담아 그림책 수준 높여

한 권의 그림책은 글쓴이와 그림 그리는 이가 다를 수도 있고 같을 수도 있다. 현대 그림책의 큰 흐름은 후자가 지배적이다. 이제 막 시작한 한국의 그림책 만들기 상황에서는 아직도 전자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래동화 등을 소재로 그리는 그림책들이 전자의 대표적 성과이다.

‘엄마 마중’은 이태준의 글을 텍스트로 한 그림책이다. 1938년 발간된 ‘조선아동문학집’에 실린 짧은 글이 텍스트이다. 이 텍스트를 그림책으로 그린 ‘엄마 마중’은 한 마디로 글쓴이와 그림 그린이가 분리된 그림책 만들기의 한 전형이며, 그 수준 또한 한국 그림책에서 매우 높은 자리에 놓을 수 있다. 그 한 예로 첫 장면 풍경과 마지막 장면 풍경의 반복 제시는 그림책만이 할 수 있는 모델의 전형이다. 이 두 장면은 한국 그림책의 수준을 높인 성과로 남을 것이라고 기대해 봄 직하다.

‘엄마 마중’은 그림책에서 그림 그리는 이가 어떻게 글의 공간 속에 개입하여 그림책만이 할 수 있는 ‘울림의 공간’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점에서도 높은 수준을 이룩하고 있다. 기쁜 마음으로 ‘엄마 마중’을 수상작으로 선택했다.

정병규 정병규 디자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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