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16일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에 대한 기존 판례를 바꾼 것은 법원이 최근 추진하고 있는 공판중심주의 강화를 위한 선명한 의지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공판중심주의란 재판에서 제시되는 진술이나 증거로만 유무죄를 판단하겠다는 것으로 최근 법원이 도입을 결정한 배심·참심제 등의 사법개혁 방안과도 맥을 같이 한다.지금까지 재판은 검찰 수사 등 법정 밖에서 작성된 각종 서류를 중심으로 이뤄졌으며, 이 과정에서 피고인이 ‘검찰 조서의 내용이 진술과 다르다’고 부인해도 조서에 서명·날인한 사실만 인정되면 조서를 증거로 채택해 왔다. ‘법관과 같은 자격을 가진 검사는 믿을 만 하다’, ‘실체적 진실발견과 신속한 재판에 도움이 된다’ 등의 이유로 사실상 서류 중심 재판을 측면 지원해 준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새 판례를 통해 앞으로 피고인이 진술을 번복할 경우 검찰 조서를 증거에서 배제하고 오직 법정에서의 진술과 증거로만 판단하겠다고 방침을 바꿨다. 이에 따라 기존 검찰 수사관행은 적지 않은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피의자의 자백이 담긴 조서가 증거로 인정됨에 따라 자백을 받는 데 주력했던 게 지금까지의 수사 관행이었다면, 이제는 피의자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할 경우를 항상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검 관계자는 "수사과정에 변호인을 배석시키고 조사과정을 녹음·녹화 하는 등 수사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미 지난해 6월부터 전국 10개 검찰청에서 조사과정을 캠코더로 녹화하고 있으며 앞으로 첨단 방식의 디지털 조사실로 확대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번 판결로 피고인들이 툭하면 법정에서 고문 수사 등 주장을 제기할 텐데 인권 수사준칙을 더욱 강화해 불법 시비를 원천 차단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검찰은 이날 판결에 대해선 "형소법 관련 조항의 단서규정에 의하면 ‘특별히 신빙할 만한 상태’(특신상태·강압이나 자백이 없는 상태)에서 진술했다는 사실이 인정되면 피고인이 진술을 부인해도 역시 검찰 조서가 증거로 채택될 수 있다"고 판결취지를 해석해 향후 재판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대검 관계자는 또 "현재 무죄율 0.065%에 불과한 형사 무죄 사건의 대부분은 새 증거에 의한 것으로 진술 번복과는 상관이 없어 이번 판결이 향후 재판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별도의 설명자료를 내 "이번 판결이 단서규정에 대해 별도로 판단하지는 않았지만, 해당 조항을 전체적으로 볼 때 본문과 단서 요건을 모두 갖추지 않으면 증거능력이 없다고 해석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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