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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교과서 지문 신문광고 강송식 사장/"삭막한 세상 文學 광고로 해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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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교과서 지문 신문광고 강송식 사장/"삭막한 세상 文學 광고로 해갈을"

입력
2004.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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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전면광고가 있다.제품 소개 대신 온통 빽빽한 글로 거의 전 지면이 채워져 있다. 1975년도 국정 교과서 발행 ‘고교 국어’190~195쪽에 실렸던 ‘페이터의 산문(散文)-이양하’전문이다. 64년부터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후 시험에 단골 지문으로 출제돼 40대 이상이라면 금방 고교 시절의 추억에 빠져들게 하는 글이다. 정작 ‘한우물’이라는 정수 기업체 이름과 제품 소개는 구석에 눈길도 안 닿을 만큼 조그마하게 실려 있다. 이 회사 강송식(65) 사장은 이런 ‘미련한’ 광고를 낸 뒤로 하루 서너 통씩 전화, 이메일을 받고 있다. "어느 의사는 추억에 젖게 해 줘서 고맙다며 아들에게 하루 5번씩 읽도록 했다고 합디다. 한 교수도 가슴이 찡 하다며 학습 교재로 사용하겠다고 전해 왔습니다."

강 사장은 이 글을 복사해 늘 지니고 다닌다. "영국의 예술비평가 월터 페이터가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대해 쓴 내용이지요. 지금으로 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을 가진 미국 대통령이 명예, 돈, 권력이고 다 부질없으니 마음 편히 지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쓴 글입니다." 그가 이 글을 접한 건 경기고 3학년 때인 58년. 당시 국어 교사였던 고(故) 이 작 선생님이 유독 강조한 문장들에 군데군데 빨간 밑줄을 그은 채로 광고에 실었다. 처음 언론사 광고 담당자들도 "이게 광고 맞느냐" "파일을 잘못 보낸 것 아니냐"는 확인 전화가 줄을 이었다고 했다.

가난한 집안의 4남매 중 둘째인 강 사장은 군산고 입학 후 사흘 만에 어머니에게 ‘무소식이 희소식인 줄 아십시오’라는 당돌한 쪽지를 남기고 무작정 상경했다. 대한인쇄공사 견습공으로 취직해 밤에만 공부해 가며 1년 뒤 경기고에 합격했다.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할 때까지 가정교사를 했는데 그 때 잘산다는 게 꼭 돈, 지위와 일치하는 게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페이터의 산문이 바로 그런 내용이지요."

20여 년간 경기고 등에서 교편을 잡은 그는 술로 얻은 병을 고치려고 민간 요법에 관심을 갖다가 ‘살아 있는 물’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렇게 86년부터 정수기 사업을 시작했으나 지금껏 영업사원이나 대리점이 없다. 그래도 워낙 입소문이 나 올해도 100억 원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후속 광고 ‘작품’도 이미 정해 놓았다.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에서 발췌한 것으로 도연명이 고향집에 하인 아이를 심부름 보내면서 들려 보낸 편지 문구란다. "‘그 아이 또한 어느 부모의 귀한 자식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내용이지요. 교직 생활 내내 철학으로 삼았던 글입니다."

글 박석원기자 spark@hk.co.kr

사진 김동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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