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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30번째 작품 '역도산' 제작한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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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30번째 작품 '역도산' 제작한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

입력
2004.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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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먹고 30편을 다 열거해 보자.돈을 갖고 튀어라, 깡패수업, 비트, 모텔 선인장, 8월의 크리스마스, 처녀들의 저녁식사, 태양은 없다. 유령, 행복한 장의사, 플란다스의 개, 킬리만자로, 시월애,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디안 썸머, 썸머타임, 무사, 봄날은 간다, 화산고, 정글쥬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로드무비, 지구를 지켜라, 살인의 추억, 싱글즈, 말죽거리잔혹사, 범죄의 재구성, 늑대의 유혹, 슈퍼스타 감사용, 내 머리속의 지우개 그리고 역도산.

한국영화를 좋아한다고 자신한다면 모두 들어본 제목이고, 그 중 스무 편 정도는 봤을 터이고 설이나 추석연휴 때 ‘특별행사’로 극장을 찾는 사람이라도 대여섯편은 봤을 것이다.

그런데 30편의 공통점은 뭘까. ‘작품성이 좋다’도 틀린 답은 아니다. 그러나 ‘돈을 갖고…’나 ‘나도 아내가…’를 놓고 그렇게 말하기는 좀 남세스럽다. 게다가 ‘썸머타임’은 질펀한 에로물이니. ‘전부 싸이더스 영화네’라고 하면 거의 만점이지만, 더 정확한 답은 ‘차승재(44)가 만든 영화들’이다. 우노(Uno)란 이름으로 만든 작품도 여섯 편은 되니까.

몇 편을 빼고는 자타가 ‘작품 좋다’고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흥행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지난해 장준환 감독에게 신인상이란 신인상은 모두 안긴 ‘지구를 지켜라’의 관객은 전국 6만6,000명. 처참했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2000년)는 또 어떻고. 개봉 당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해외영화제가 주목하자 뒤늦게(2년 후) 국내에서도 ‘가만히 생각해보니 좋은 영화’라고 떠들어 그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행실패하면 바로 퇴출’이 다반사인 충무로에서 그는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올해 ‘말죽거리 잔혹사’로 시작해 ‘내 머리속의 지우개’까지 5편에 1,200만 관객을 모으며 한국영화제작의 최강자로 우뚝 섰다. 1995년 8월, 1등이 되자고 우노(Uno)란 이름의 영화사 간판을 내건 지 10년. 그 이름대로 된 것이다.

비결이 뭘까. 늘 그렇듯 대답은 허망하다. "없어요. 어떻게 사람들 믿고 하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그를 오래 만난 사람들은 안다. 그 말에 비결이 있다는 사실을. 바로 사람냄새다. 영화 일을 하기 전 옷장사 할 때도, 재미 삼아 친구(김태균 이현승 감독 등) 따라 강남 가듯 서너 해 충무로 제작부에서 일할 때도, ‘그래도 종점인 제작자는 한번 해봐야지’ 하면서 쉬운 이야기로 영화 한 편(‘돈을 갖고 튀어라’) 만들고 ‘안되면 다시 제작부장하지, 뭐’라고 할 때도, 99년 벤처열풍을 타고 로커스홀딩스에 들어갔다 100억원의 부채만 안고 2002년 다시 홀로서기를 하던 힘겨울 때도, ‘살인의 추억’으로 그렇게 바라던 ‘500만명 대박’의 꿈이 이루었을 때도, 그는 한결같다.

그래서 늘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 실패하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함께 한다. 봉준호 김태균 장준환 감독이 그랬다. "믿음을 갖고 솔직히 이야기하면 잘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을 서로 알게 되고 또 인정하게 됩니다. 봉준호에게 허진호 같은 멜로영화 하라면 죽어도 안 나오죠. 총의 영점을 잡듯 강점 하나하나를 찾아주고, 약점은 다른 것으로 보완해 주는 게 제작자의 일이죠."

결과 두번째 작품으로 봉준호에게서 ‘살인의 추억’, 김태균에게서는 ‘늑대의 유혹’, 유하에게서는 ‘말죽거리잔혹사’가 나왔다. "사람을 잃거나, 불량식품 같은 영화로 돈을 벌고 싶지 않습니다.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회를 돌아보는, 10년 후에도 볼만한 그런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문학동네 창비 문지 같이 오랫동안 살아 남는 출판사를 보십시오. 당장 책이 안 팔린다고 좋은 작품을, 작가를 버립니까."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한건 아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 를 만들 즈음이었다. 대중적 접근이 어렵고, 새로운 영역이라도 공을 들여 완성도를 높이면 관객들과 접점이 있구나 확인했다. 이후 늘 새로운 소재와 방식과 시장을 찾았고, 비록 그것이 ‘관객들의 낯섦’으로 흥행에는 실패하더라도 ‘잘 만든, 의미 있는’ 영화를 만드는 싸이더스로 나아갔다. 15일 개봉한 ‘역도산’도 마찬가지다. 안으로는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남성적 투지에 대한 향수가 좋아, 밖으로는 ‘한류’시장을 지속하려면 배우의 일회성 인기가 아닌 콘텐츠로 중독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일본과 공동제작을 시도했다.

"어디까지 가고 싶다는 마음도 없어요. 그냥 오래 하고 싶어요. 영화를 하면서 내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고맙죠. 영화한테 잘하고 싶어요. 못하면 나 뿐 아니라, 좋은 후배들 길까지 막는 게 되니까. 그건 죄악이죠. 30편에 대한 감회요. 없어요. 50편 만들고 나면 있을까."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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