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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시청 앞 인공기'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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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시청 앞 인공기' 단상

입력
2004.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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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포럼’ 완장을 두른 한나라당 안의 헌 우익이든 ‘자유주의 연대’라는 털가죽을 걸친 전향 386들의 새 우익이든, 한국 우익의 나쁜 습속 하나는 자유를 제 사유물로 여기는 것이다. 일찍이 로자 룩셈부르크는 러시아 혁명기 레닌의 독선적 행태를 비판하며 "일당의 당원들만을 위한 자유는, 그 당원들 수가 아무리 많아도, 결코 자유가 아니다"라고 일갈한 바 있다. ‘낡은 좌익’으로서 그녀가 혐오한 것은 특권화한 자유, 타인의 부자유를 대가로 누리는 자유였다. 한국의 신구 우익이 제 존재증명처럼 떠벌리는 자유가 바로 이 특권으로서의 자유, 자유가 아닌 자유다.한국의 헌 우익과 새 우익은 한 목소리로 국가보안법을 싸고돈다. 그런데 국가보안법 문제는 모든 자유의 핵심인 사상의 자유에 대한 태도 문제다. 그리고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미국 법률가 올리버 홈스가 지적했듯, 공동체 주류가 증오하는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신주 모시듯 하는 한국의 신구 우익은, 그들이 내건 자유의 깃발에도 불구하고, 자유의 핵심을 짓밟고 있는 셈이다.

제가 동의하는 사상에 대해서는 파시스트도 공산주의자도 기꺼이 자유를 보장한다. 자유주의자들이 그들과 다른 점은 제가 증오하는 사상에 대해서까지 너그러운 것이다. 그런데 자유를 내세우는 한국 우익은, 헌 날개든 새 날개든, ‘다른 생각’에 대한 불관용을 도덕률로 삼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들이 정략적으로 ‘빨갱이 만들기’를 일삼는다는 사실 못지않게, 생각이 다르다는 것 자체를 절멸 대상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 국가보안법 존치론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논거 하나는, 이 법이 없어지면 서울시청 앞에서 인공기를 흔들어도 처벌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한 토론회에서 이 문제가 불거지자, 폐지론에 선 법률가 출신 정치인은 형법상의 내란죄나 외환죄의 예비·음모로 처벌할 수 있다고 맞받았다. 그러나 그는 정직하지 못했다. 상대편 토론자가 반박했듯, 그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 폐지론자는 토론회에서, 인공기를 흔드는 것 자체가 왜 형벌의 대상이 돼야 하느냐고 되물었어야 했다.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행위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는 구체적 결과로 이어지기 전에는, 즉 표현의 자유 행사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따르기 전에는 그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은, 오늘날 제1세계에서 자유가 가장 위협받고 있는 미국에서까지 견지되는 원칙이다. 인공기를 흔든 사람이 우연히 도로교통법이나 집시법을 위반했다면 처벌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또 그가 우연찮게 간첩 행위를 했다면 간첩죄로 처벌해야 할 것이고, 예전에 전두환·노태우가 그랬듯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기 위해 폭동했다면 그 예비·음모까지도 마땅히 내란죄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공기를 흔드는 표현의 자유 행사 자체를 지금처럼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 찬양·고무죄로 얽는 것은 자유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시청 앞에서 인공기를 흔들어대는 것은 분명히 대다수 한국인들의 미감을 거스르고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철없음이나 유치함 자체를 형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시민적 자유의 밑바탕을 위협한다. 시청 앞에서 부시 당선을 위해 기도를 올리거나 히틀러 사진을 들고 있는 것 자체를 처벌하는 것이 자유주의를 위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가보안법이 설령 필요악이라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법은 누구에게나 일반적으로 적용돼야 한다. 그런데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두 해 전 북한에 들어가 김정일을 만나고 오는 과정에서 국가보안법의 거의 전조항을 철저히 위반했다. 한국의 신구 우익이 국가보안법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우선 박 대표 구속을 촉구해야 한다. 자유는 ‘당원’에게만 소중한 것이 아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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