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에서 출발한 승용차가 경부고속도로를 1시간 30분 남짓 달려 독립기념관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 아담한 대학캠퍼스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충남 천안시 병천면에 위치한 한국기술교육대학교(약칭 한기대)다. 1992년 3월 노동부 산하 4년제 국립대로 개교, 96년 2월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9년간 ‘취업률 100%’라는 경이적 기록을 놓지 않고 있는 대학이다. 4년제 대학 중 취업률 1위다. 외환위기 이후 청년실업이 급증하는 현실의 한복판에서 거둔 기록이라 더 의미있다. 대학 정문을 들어서자 이 학교의 모토인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새긴 대형 석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임경화 입학취업추진본부장(공학박사)은 "실사구시 정신은 우리 대학 설립과 교육과정의 최종목표"라고 말한다. 취업률 100%를 유지하는 비결이 이 말에 압축돼있다는 얘기다.개교 13년째. 그간 9회까지 1,68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 중 석·박사 과정을 위한 대학원 진학(223명) 입대자(47명)를 제외한 1,415명 전원이 취업했거나 창업했다.
일반대학들이 막연하게 취업률을 발표하는 것과는 달리, 한기대는 노동부 출연대학이라는 점 때문에 취업률 발표가 노동부가 관리하는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에 근거해 이뤄진다. 졸업생이 기업이 납부하는 고용보험 대상자인지를 확인한 뒤 이를 근거로 취업 여부를 확인해 취업률을 산정하기 때문에 한치의 오차 없는 취업통계다.
특히 한국기술교육대의 취업률이 눈길을 끄는 것은 ‘묻지마 취업’이 아니라 졸업생이 전공과 기능을 살려 원하는 직장을 찾아내는 ‘고순도 취업’이기 때문이다. "삼성ㆍ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10%, 노동부 산하기관의 능력개발 훈련교사 18%, 취업 1년차 연봉 2,000만~2,700만원선인 중견기업 55% 정도로 분산돼 취업이 이뤄진다"는 것이 곽철원 대학평가팀장의 설명이다.
재학생은 어떻게 길러질까. 기숙사 입사율이 65%에 달한다. 신입생은 100% 기숙사가 제공된다. 연구실습실은 학생들에게 24시간 개방이다. 잠자다가도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벌떡 일어나 실험실로 달려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 셈이다.
학교 예산은 첨단 실험실습 장비 구매에 최우선적으로 할당된다. 한기대가 올해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서도 이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년 총 367억원의 예산중 52억원을 시설·장비 교체비로 투입했다. 2003년 39억원에 비해 32.7%가 늘어난 것이다. 곽철원 대학평가팀장은 "일반 사립대들이 한기대를 숱하게 벤치마킹해갔지만 현실적인 한계에 부닥쳤던 것은 결국 장비구입예산 문제였다"며 노동부 출연대학이라는 점이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교수 1인당 학생수 20명 유지, 전임교수 임용요건을 기업경력 3년 이상인 사람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도 한기대만의 특징이다. 삼성그룹 출신인 임경화 입학취업추진본부장은 93년 삼성종합기술원 재직 시 삼성그룹내 최고 권위인 ‘삼성기술대상’ 을 받았다.
전체 교과과정 중 실험실습이 차지하는 비중은 45%. 졸업학점도 일반대 공대가 130~140학점인데 비해 10학점 이상이 많은 150학점을 이수토록 하고 있다. 등록금은 191만원 선으로 국립대 공대 수준이거나 더 싸다. 전체학생 42%가 장학금 혜택을 받고 있다.
이런 강점을 가지고 한기대는 BK21 지역우수대학(교육부) 대학종합평가 전국최우수대학(한국대학교육협의회) 전기·전자·정보통신 학문분야 평가 최우수그룹 대학(정보통신부) 창업보육센터 및 산학연컨소시엄센터 선정대학(중소기업청) 반도체장비 기술교육센터(산업자원부)로 잇달아 선정됐다. 6월에는 산업자원부가 창의적 공학교육모델로 지정해 지원하는 ‘전국 3개 거점 지방대학’의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문형남 총장은 "학교 창립과정에서부터 이미 일본 독일 등의 기술·현장 중시형 대학을 모델로 했다"고 다시 강조했다.
천안=이준호기자 junhol@hk.co.kr
● 문형남 총장 인터뷰
"‘서울특별시 천안구’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문형남(58)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총장은 지방대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취업률 100%를 달성한 한기대 이야기 대신 천안 이야기부터 꺼냈다.
"천안 하면 먼곳처럼 생각할지 몰라도 서울역에서 천안·아산역까지 고속철도(KTX)로 34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30일 개통하는 수도권 전철(수원역에서 천안역까지 전철 연장개통)로도 1시간 남짓이면 서울역까지 갑니다." 문 총장은 "교통이 막히는 서울 도심 출퇴근 시간과 비교해보면 서울에서의 통학도 큰 불편없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1975년 공직에 들어와 노동부 노정국장, 산업안전국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거치고 한국산업안전공단 이사장에 재직중이던 2002년 2월 한기대 4대 총장에 취임한 문 총장은 이후 2년 10개월간 한기대의 지평을 더 넓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노동조합법 상해’ ‘노동쟁의조정법 상해’ ‘노동관계법 업무편람’ '노동조합 노동쟁의’ ‘노동법 통람’ 등저서를 냈다. 문 총장은 11월에는 2006년 3월 개교를 목표로 천안시내 한복판에 한국기술교육대 제2 캠퍼스를 기공하기도 했다. 한기대 제2캠퍼스는 일명 ‘IOC(Industry Oriented Convergence·기업지향적 캠퍼스)’로 부르기도 한다.
- 9년 연속 취업률 100%라는 대기록의 비결이 뭔가.
"우리나라의 자원은 사람밖에 없다. 경제적 용어로 노동력 뿐이다. 그런데 공장에서는 일할 사람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음악이나 체육처럼 기술공학도 실기는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배야 한다.
일반 공과대학에서는 기초이론을 이것저것 약간씩 배운 뒤 실습 한번 못하고 졸업한다. 하지만 한기대는 교수연구비에 예산이 집중돼있는 다른 공과대학과 달리 과감하게 첨단 교육장비에 우선 투자해 학생들의 실용능력 배양교육에 초점을 맞춰왔다. ‘학부’는 실용교육 중심, ‘대학원’은 연구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그간의 지론이 한기대를 통해 발현되고 있는 셈이다."
- 14일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발표됐고 전국 202개 4년제 대학들이 22일부터 일제히 원서 접수를 시작하면서 대입 정시모집 대장정에 들어간다. 한기대를 압축해 소개한다면.
"장래를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곳이다. ‘행복한 입학, 보장된 장래’라는 문구를 내 명함에 새기고 다닐 정도로 나는 우리 대학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명문은 원래 선배가 만드는 것이다. 취업률 100%의 선배들이 대한민국 곳곳의 요직에서 활약하고 있다."
- 정부도 이공계 우대정책을 펴고 있다. 현장에서 느낀 경험을 덧붙여 전달해달라.
"기술의 라이프 사이클이 무척 짧아졌다. 과거에는 한 기술로 5년, 10년도 먹고 살았지만 지금은 2년, 3년이다. 기술 진보가 급속해지면서 공과대학 기술교육이 국가적 차원에서 더 중요해졌다.
공과대학의 기술장비에 대해서는 감가상각비 개념에서 탈피해야 한다. 첨단 실험실습장비 교체주기를 짧게 가져가야 된다는 얘기다. 예산당국의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이공계 지원자에게 장학금을 준다고 하지만 자녀 수가 1~2명인 현실에서 장학금으로 움직이는 시대는 갔다. 기업, 특히 대기업 채용시스템이 서울 본사가 채용해서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것도 바뀌어야 한다. 지방에 있는 공장에서 자기 지방 사람을 뽑아 써야 그 지방도, 그 기업도, 그 대학도 같이 큰다."
- 한기대를 더 발전시킨 복안을 갖고 있는지.
"한기대를 ‘능력 개발의 메카’로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기술능력 개발 전문가를 육성할뿐만 아니라 능력 개발에 관한 한 국내 최상급 대학의 모델을 제시할 것이다. 국내 교육기관에 능력개발 교육방법, 교재 편찬 등을 지원하는 구상도 갖고 있다.
또 남북 교류가 확대되면 1,700만 북한 근로자의 재교육 문제가 대두된다. 우리가 맡을 것이다."
천안=이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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