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2월 12일, 미국 시애틀 그랜드 하얏트 호텔. 권위 있는 과학 단체인 국가과학진흥회(AAAS) 연례회의에 참석한 기자들의 촉각은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53) 교수에게 쏠렸다. 이 자리에서 발표된 황 교수의 ‘인간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는 과학저널 ‘사이언스’ 표지 논문을 장식한데 이어 BBC, 뉴욕 타임스, CNN 등 세계 유명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과학계의 초대형 이슈로 떠올랐다.세계를 놀라게 한 인간배아복제 줄기세포 연구 결과 발표를 신호탄으로 ‘황우석’은 2004년 한해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과학자의 이름이 됐다. 세계적인 ‘스타 과학자’ 탄생 소식에 국내 각계의 지지도 잇따랐다. 과학기술부, 과학재단 및 재계 인사를 주축으로 4월 황우석 후원회가 결성됐고 정부에서는 그에게 개인 과학자 최대 규모인 265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키로 결정했다. 정부도 황 교수의 가치를 인정, 경찰청 경호요원 2명을 파견해 그를 보호하기로 했다.
미국 대선 캠페인에서 줄기세포 연구가 첨예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황 교수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중심으로 인간 배아복제 연구를 전면 중단시키자는 ‘코스타리카안’이 유엔에 상정된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
황 교수는 두 차례의 유엔 연설과 인터뷰 등을 통해 ‘과학적 목적의 연구를 제약해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펼쳤다. 말에서 떨어진 후 척수 손상으로 전신이 마비된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도 황 교수에게 연구를 계속해줄 것을 공개적으로 부탁해왔다. 리브는 "올해 안에 만나자"고 제안했으나 10월 초 결국 세상을 떴고 대선 캠페인과 함께 줄기세포 연구 논란도 절정에 달했다.
황 교수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유엔은 11월, 최종 표결을 1년 유보하되 그 동안 줄기세포 연구 허용 여부는 각 국가의 자율에 맡기도록 결정했다. 황 교수는 당시의 활동에 대해 "과학자로 연구에만 전념하다가 처음으로 외교 무대의 중심에서 목소리를 냈던 귀한 경험"이었다며 "믿는 바를 위해 열심히 뛰었는데 원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 보람 있게 여긴다"고 회고했다.
어린 시절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소의 눈망울을 보며 수의학자의 꿈을 키워왔다는 황 교수의 성공 뒤에 따른 남다른 노력도 화제가 됐다. "우리 연구소에 없는 것은 명절, 휴일, 퇴근시간 세 가지"라는 말과 함께 그의 평균 출근시간이 새벽 5시, 귀가 시간은 일러야 자정이라는 사실에 세계가 놀랐다.
그의 향후 연구 방향은 크게 두 줄기로 나뉜다. 인간배아복제 줄기 세포를 이용한 세포 치료와 장기 이식용 돼지를 통한 대체 장기 개발이 그것으로 모두 인간의 생명을 위한 것이다. 줄기세포 연구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는 상황이지만 그는 "영국, 일본, 미국 등 쟁쟁한 과학자들이 밤낮없이 실험에 몰두하고 있어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세계의 고통 받는 수많은 불치병 환자들에게 그는 희망이다. 2001년 교통사고로 인한 척수 손상으로 전신이 마비된 가수 강원래도 그의 연구 소식을 접하고 전화를 걸어 "0%였던 희망이 0.0001%가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은 황 교수의 연구가 결실을 맺는다면 노벨상 수상도 어렵지 않다고 흥분하지만 정작 그는 "노벨상은 내 것이 아니라 연구를 이어갈 후배들의 몫"이라며 겸손한 입장이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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