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 해가 벌써 저물고 있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하는 상념에 젖게도 만든다. 이 격주 칼럼을 쓰기 시작한 것이 5월. 그동안 방송에 대한 이런저런 글을 열 다섯 차례 썼다. 첫 칼럼의 주제는 ‘공익적’ 오락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막 종영한 MBC의 ‘!느낌표’를 글의 단초로 삼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한 해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12월, 이 ‘!느낌표’가 다시 시작했다. 끝을 이야기해야 할 시점에 다시 시작을 이야기할 단서가 생겼다는 사실이 역설적이면서도 의미 있다.시청률 경쟁에서 총체적 위기에 빠진 MBC가 다시 ‘!느낌표’를 시작한 것은 비장의 카드를 꺼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다.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방송사의 치열한 경쟁이나 복잡한 전략을 모두 이해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좋은 프로그램을 자주, 그리고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느낌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시청률도 높았거니와, 방영 며칠만에 2,000여건의 시청자 의견이 게시판에 올라오고 그 대부분이 칭찬과 격려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만족스러운 재출발인 셈이다.
MC의 소개가 번잡하고 어수선하고 시끄럽다는 불평, 과다한 한자사용이나 사생활 침해 가능성에 대한 경고, 서울 위주의 기획이라는 비판들은 모두 제작자들이 귀 기울여야 할 지적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재미와 감동’을 칭송한다. 이 평가는 적절하다. 오락 프로그램에 ‘교양’을 잘 버무렸다는 평가가 아니라, ‘감동’이 있다는 평가다.
흔히 ‘!느낌표’ 류의 프로그램을 공익적 오락물이라 부른다. 여기서의 ‘공익성’은 계몽주의적 교양을 지칭하지 않는다. ‘정서적 공감’으로부터 출발하는 그 무엇이다. 그러고 보니 올 한해 방송의 ‘공익성’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야당은 공영방송의 공익성이 부족하다고, 여당은 상업방송에 공익성이 부재한다고 비판하였다. 무엇이 공익이고 무엇이 공영성인가? 시청자의 교양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것이 방송의 공영성이라는 BBC 개념을 따른다면, 진지한 교양물이나 날카로운 시사물이야말로 공익적이다. 하지만 시청자 개개인의 행복지수의 총합이 공익이라면 보다 많은 시청자들이 보고 즐거워하는 시청률 높은 프로그램이 공익적이다. 딱히 무엇이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공익의 주체는 공(公), 즉 시청자로 대변되는 ‘많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방송의 공익성을 주장하는 많은 정치인 학자 또는 시청자들이 사실은 추상적, 이상적 개념에 머물며 ‘벙어리간의 대화’를 하는 것은 아닌지. 종종 정치인들은 ‘감동의 정치’를 이야기한다. 기실 공익의 시작도 같은 지점이어야 한다. 공익성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건, 그 출발은 정파적 이해가 아니라 현실 속의 시청자 혹은 대중이 느끼는 ‘감동’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 해는 끝나 가고 ‘!느낌표’는 새로이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이 보다 ‘즐거운’ 프로그램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곤 하는 ‘공익’의 다른 얼굴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래서 새해에는 ‘방송의 공익성’이라는 단어가 정치적 수사에 머무는 일이 없어지기를 바란다.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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