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일본의 소니가 14일 포괄적 상호 특허 사용을 허용하는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세계 정보기술(IT) 업계를 이끌고 있는 선두주자들끼리 특허 공유에 합의, 서로의 기술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IT업계에 미칠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양 사는 이날 계약에 따라 AV 등 주요 제품들과 반도체 등 부품, 장비와 관련된 기본기술 특허로 이뤄진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일일이 특허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상대 회사의 특허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계약기간은 일단 2008년까지지만 이후에도 갱신을 통해 포괄적 크로스 라이선스 관계는 유지될 전망이다. 양 사는 자회사(지분 50% 이상)와 향후 등록될 미래 특허에 대해서도 이번 계약을 적용키로 합의했다.
1990년부터 2003년까지 등록된 미국 특허 기준으로 삼성전자는 소니의 특허 1만3,000여건을, 소니는 삼성전자의 특허 1만1,000건을 별도의 라이선스 계약 없이 공유하게 됐으며 전체 공유 특허 건수는 이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DNle(디지털 영상기술) 홈 네트워크 기술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아키텍처 등 양 사가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는 핵심 기술과 디자인 등은 이번 계약에서 제외돼 앞으로도 각 사가 독자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LCD 분야 합작사인 S-LCD 출범과 관련해 논의를 해오다 협상이 시작됐다"며 "이번 계약으로 밀고 당기는 특허 협상 없이 기술 및 제품 개발 속도가 더 빨라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세계 굴지의 IT 기업이 포괄적인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이는 최근 IT 업계에서 특허분쟁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소모전보다는 협력을 통해 서로의 기술력을 배가시키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특히 반도체 등 부품, 전자제품, 장비, 표준기술 등 특허 공용 범위가 포괄적이어서 약점은 보완하고 강점은 더 부각시키는 시너지효과가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소니는 가전제품에 메모리 반도체 채용이 많아지는 디지털 가전시대를 맞아 삼성의 메모리 기술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고, 삼성은 소니의 앞선 비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삼성과 소니의 이번 계약 체결에 대해 세계 IT업계는 상당히 경계하고 있다. 기술 및 표준화 부문에서 선두업체인 양 사가 ‘함께 1등으로 가자’는 전략을 공표함에 따라 그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후식 동원증권 수석연구원은 "소니의 메모리스틱 채용, LCD 분야 합작사 설립 등에 이어 특허 공유 계약까지 체결함에 따라 삼성과 소니의 지속적인 밀월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양 사가 디지털 가전시대의 주도권을 유지, 발전시키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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