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편집국 문화부의 아침은 독자들이 연다. 신춘문예 응모자들이다. 숨어 지켜보기라도 한 듯, 자리에 앉기 무섭게 전화벨이 울린다. 열에 일고여덟은 문의전화다. ‘원고지 매수는 얼마냐’ ‘A4용지로 출력해서 내도 되나’ ‘분량이 약간 넘쳤는데 괜찮은가’그들은 끝도 없이 묻고 묻는다. 1면 사고(社告)를 두 차례나 냈고, 인터넷으로 상시 안내를 하고 있으니 그들이 내용을 모를 리 없다. 다만,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이 쓴 원고를 원하는 곳이 있음을,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외로운 것이다.
마감일이 임박할수록 전화기는 더 부산해진다. ‘마감 시한은 언제냐’ ‘소인 날짜냐, 도착 날짜냐’ ‘직접 찾아가면 몇 시까지 받아주냐’…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나이가 몇이든 그래서, ‘문학청년’일까. 마감일을 앞둔 그 순간만큼은 손수건 가슴에 단, 얼마간 설레고 얼마간 불안한 아이들의 마음일지 모른다.
우편접수가 못미더운 이들은 원고를 들고 직접 찾아온다. 괜찮다는데도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휴게실에 앉아 원고지에 다시 정서(正書)해서 낸 50대 아저씨도 있었고, 먼저 낸 원고를 되돌려 달라며 원고더미를 헤집어 놓더니 슬며시 새 원고를 내고 가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가족이나 친지들 몰래 가명(필명)으로 응모하는 이들도, 배우자나 형제 친구에게 부탁해서 내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이는 ‘(원고뭉치의) 맨 위에 올려 심사해달라’고 청했고, 고희(古稀)를 앞둔 한 할머니는 첫 응모라며 ‘잘 봐 주십사’ 했다.
그들은 산처럼 쌓인 응모작품 더미를 손으로 눈으로 더듬으며, 그 막막한 경쟁률을 숫자가 아닌 실물로, 육화한 감각으로 느끼고자 했다. 어쩌면 지난해에도, 지지난해에도 응모했을 이들이다. 원고를 전한 뒤 움츠린 어깨로 돌아서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부문별로 딱 한 편을 뽑을 것이기에 그 열정을 직접 마주하는 일은 늘 감동적이면서, 한편 무참(無慙)했다. ‘올해는 떨어져도 좋으니 제발 내 시의 문제점이라도 지적해달라’는 편지를 원고 사이에 끼워 보낸 이도 있었다.
하지만 고독한 이들이 있기에, 우리시대 문학이 선 자리는 든든하다. 외롭지 않다. 그들이, 그 수줍은 열정이 우리시대 문학의 힘이고 내일의 자양분이지 않겠는가. 올해 응모자는 모두 2,080명(복수응모 포함·지난해 2,265명). 시 1,069명, 소설 465명, 희곡 123명, 동시 158명, 동화 265명이다. 그들은 초등학생부터 노익장의 칠순까지, 문학 전공학과의 초년생부터 막일꾼까지 다양하다. 교화기관 재소자도 적지 않다. 미국 중국 캐나다 프랑스 호주 프르투갈 인도네시아 등 해외 동포들의 호응도 여전했다.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결과는 예·본심을 거쳐 내년 1월1일자 지면에 발표된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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