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또 그 말이야…."14일 오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경찰청이 발표한 ‘성폭력 피해자 인권침해 방지대책’을 받아보니 한 달 전 일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11월 초 한국일보는 여성 경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을 수 있는 여경조사청구권 제도가 일선 경찰서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 보도 다음날 경찰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여경조사 청구권 제도’를 의무적으로 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듯 그 대책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한달 뒤 다시 경찰은 앞으로 성폭력 피해자 수사시 피해자의 요청 여부와 상관 없이 여경이 조사하게 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낯익은 느낌이 든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렇다 보니 이번 대책 발표에도 쉽게 맘이 놓이지 않는다.
여성단체에서는 "여경의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실제 여경의 조사를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일선 경찰들은 "성폭력 사건은 대부분 형사계나 강력반에서 처리되는데 여기에는 여경이 거의 없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한다. 경찰이 여경 추가 배치를 진행하고 있다지만 갈 길은 아직 멀다.
더욱이 문제의 핵심은 멀쩡한 제도가 아니라 여성 피해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수사관의 마음가짐이다. 피해자 가족들은 "남자 수사관이 여자 애들에게 수치심을 느끼는 말을 반복하게 하거나 피의자를 버젓이 옆에 두고 진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내 딸, 내 누이였다면 수사관이 그렇게 행동했을까. 경찰은 이날 대책발표와 함께 심심한 사과의 말을 했다. 하지만 이 사과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성훈 사회부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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