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2월15일 스페인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 프란시스코 타레가가 바르셀로나에서 작고했다. 향년 57. 타레가는 근대 기타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뛰어난 기타리스트였다. 손가락으로 현을 퉁긴 뒤 이웃 현에 머물게 하는 아포얀도(apoyando) 주법을 비롯해 그가 기타 언어에 부여한 창조적 다양성은 에밀리오 푸홀, 미겔 리오벳 등 제자들에게 상속돼 20세기 음악 공간에서 기타의 영토를 두드러지게 넓혔다.타레가는 작곡과 편곡에도 욕심을 내 적잖은 양의 기타독주곡과 연습곡을 남겼고, 바하와 모차르트에서 하이든과 슈베르트를 거쳐 쇼팽과 바그너에 이르는 많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기타 연주용으로 손질했다. 타레가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일 것이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에 자리잡은 알람브라궁전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가운데 하나일 터인데, 타레가가 이 궁전에 헌정한 곡 역시 그 못지않게 아름답다.
‘알람브라궁전의 추억'의 아름다움 밑에는 슬픔이 깔려있는 듯하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그 슬픔은 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기독교도들에게 내주고 지중해 건너편으로 달아나야 했던 이슬람교도들의 슬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기독교인 타레가가 중세 이슬람인의 마음을 자신에게 투입해 곡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13세기 후반에 만들어지기 시작해 14세기에 완성된 알람브라궁전은 한 때 이베리아 반도 전체에 화려하게 꽃피었던 이슬람문명의 위대함을 뽐내고 있다. 그 시절의 시인 이븐 잠락은 알람브라와 그라나다를 다로강(江)에 허리가 감싸인 귀부인에 비유한 바 있다. 지난 달 말, 기자는 열두 해 만에 알람브라를 다시 찾았다. 알람브라는 여전히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불멸과 초월에 대한 욕망으로, 마침내 미(美)에 대한 치명적 욕망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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