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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매카시를 다시 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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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매카시를 다시 살려라?

입력
2004.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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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1월13일.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국제법 교수이자 초대 유엔 사무총장 T.H. 리의 수석법률고문 에이브러햄 펠러 박사가 뉴욕 맨해튼의 그의 아파트에서 투신, 정원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 사건은 매카시 광풍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던 미국사회에 또 하나의 큰 충격파를 던졌다. 당시 매카시 광풍을 주도하고 있던 미 상원의 매카시위원회는 앞서 유엔본부의 미국 출신 직원들에게 직무과정에서 얻는 소련관련 정보를 정부에 때마다 보고할 것을 요구했는데, 해당 직원들이 국제공무원의 신분에 관한 국제법적 근거를 들어 이러한 요구를 거절했다. 이 같은 국제법적 주장의 근거가 펠러 박사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을 안 매카시위원회는 그를 소련에 협력하는 공산주의자로 지목, 지속적인 심리적 압박을 가한 끝에 결국 자살로까지 내몬 것이었다. 애국적 시민이자 세계 평화를 염원했던 뛰어난 국제법 학자의 죽음은 그 때 미국사회에 매카시즘의 독소가 얼마만큼 광범위하고 뿌리 깊게 침투했던가를 보여주고 있다.미국을 휘몰아치던 붉은 저주는 그 진원지인 매카시위원회가 해체되고 매카시 상원의원 스스로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끝을 맺었다. 문제는 미국에서 오래 전에 죽은 매카시즘의 망령이 한반도에서 아직도 살아 숨쉬며 적지 않은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냉전 시기 매카시즘이 한국사회에 준 고통을 여기서 논할 의도는 없다. 이념에 따라 세계가 둘로 쪼개져 있던 시절을 지금의 관점에서 섣불리 평가하는 것이 그 시절을 나름대로 성실히 살았던 분들을 욕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에도 매카시즘이라는 언덕에 기대어 자신들의 부정한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시도를 보면 개탄을 금할 수가 없다. 최근에는 심지어 매카시에 대한 재평가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매카시위원회가 지목한 혐의자 중에는 후일 실제 소련간첩으로 판명된 사람도 있었으며, 매카시위원회의 활동은 비록 방법이 선동적이었다고 할지라도 공산주의자가 아닌 선량한 미국 시민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매카시위원회가 활동하던 4년 동안 소수의 공산주의자를 색출한다는 미명하에 미국에서 1만명 이상의 애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고, 그보다 몇 배나 되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자의 혐의를 뒤집어쓰고 조사를 받아야 했으며, 뉴딜정책의 퇴조와 이후 베트남전쟁 참전까지 이어지는 후폭풍을 감내해야 했다. 그보다 더 큰 폐해는 공산주의가 뭔지도 몰랐던 선량한 미국 시민들이 서로의 이웃을 혹시 소련의 간첩이 아닐까 하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매카시즘은 미국 사회에 위대한 민주주의의 실험을 성공케 만든 상호신뢰와 존중, 합리와 이성, 다원적 세계관에 큰 상처를 입힌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런 매카시즘의 망령을 지금 한국사회에 부활시키려 하는가?

매카시즘이라고 하면 정적을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여 제거하려는 정치적 권모술수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이성을 상실한 마녀사냥식 이념몰이와 세상을 선과 악으로만 나누는 극단적 세계관이 전제돼 있다. 우리의 지고한 이상인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은 결코 비이성과 이분법적 세계관을 통해서는 달성할 수 없다. 우리가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것도 사회주의 이념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이 그간 보여 왔던 교조적 김일성주의, 부자 세습, 인권 유린 등 민주적 가치질서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문제점 때문이다. 건전한 보수와 합리적인 진보 모두 이성에 바탕을 둔 발전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음을 믿는다. 매카시즘의 망령이 판도라의 상자에 영원히 갇혀 역사책의 한 구석에서만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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