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해외에서 돈의 씀씀이가 한층 커질 전망이다. 민간의 국내소비는 기껏해야 하반기에 가서야 완만한 회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원화가치 절상 등으로 여행과 유학·연수 등 해외 소비는 올해에 이어 또 다시 사상 최대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그렇지 않아도 민간소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국내에선 지갑을 닫고 해외에서만 지갑을 열어 해외소비가 국내소비를 ‘구축(驅逐)’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14일 전망기관에 따르면 여행과 유학 연수 등으로 인한 여행수지 적자는 금년 60억 달러 안팎에서 내년 70억~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국내 민간소비증가율이 2% 내외에 그치는 것에 비하면 해외소비는 두자릿수 이상 확대가 예상된다.
한국은행은 내년 서비스·소득·이전수지 적자규모를 130억 달러,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52억달러, 한국경제연구원은 125억 달러로 예상했다. 서비스·소득·이전수지 적자 가운데 여행수지 적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60% 정도임을 감안하면, 내년 여행부문에서만 70억~80억달러의 돈이 해외로 순유출된다는 계산이다.
한은 관계자는 "내년 경상수지 흑자폭은 올해보다 크게 줄어드는데, 수출둔화로 무역흑자가 감소하는 탓도 있지만 해외소비 증가로 서비스수지 적자가 확대되는 요인도 있다"고 말했다.
여행수지 적자 증가는 해외 씀씀이가 그만큼 커진다는 의미다. 현대경제연구원 주 원 선임연구원은 "원·달러환율의 하락으로 원화의 구매력이 커지기 때문에 해외지출은 그만큼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여건 변화로 제주도 여행보다 웬만한 동남아 여행이 더 저렴해졌기 때문에 해외여행은 더 늘어날 것이고, 조기유학은 물론 학생들의 단기연수행렬도 한층 길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내년초 일본에서 열리는 만국박람회 기간 일본정부가 한국인에 대한 한시적 비자면제조치를 내릴 경우 해외여행은 더 늘어날 전망. 술 골프 등 기업들의 접대문화도 국내에서 해외로 옮겨가는 추세다.
문제는 전반적인 지출억제 분위기 속에서도 ‘이왕 쓴다면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쓰겠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사교육비를 감당하느니 해외조기유학을 보내고, 국내여행 하느니 돈 모아서 해외여행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해외소비 선호심리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여 그렇지 않아도 싸늘한 내수기반은 한층 얼어붙을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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