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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폭력 등잔밑이 어둡다

입력
2004.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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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에서 성폭행 피해 청소년의 인권보호를 외면한 경찰의 안일한 수사가 드러나 비난이 빗발치는 가운데 경찰청은 13일 아동 성폭행 진술녹화 기록을 모은 자료집을 발간했다. 이 자료집은 다양한 유형의 아동 성폭행 사례를 자세히 제시하고 있어 성폭행 수사의 모델 케이스로 활용될 전망이다.◆ 선생님도 모르는 교내 폭력 = 올 상반기 경북 모 지역에서 발생한 중학생 집단 성폭행 사건은 밀양 사건과 너무도 유사해 학교 폭력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현재 중1인 A양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부터 ‘학교짱’으로 불리는 남중생 6명으로부터 7차례나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A양은 학교 앞에서 기다리던 이들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이 소리도 질러봤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 임신의 두려움 속에 8월 말 경찰에 신고한 뒤에야 이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소위 ‘일진회’로 불리는 폭력 학생들에 대해 일반 학생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상상 이상이었다고 담당 경찰관은 말했다.

◆ ‘남의 일’ 아니다 = 자료집에 밝혀진 상당수 사례는 아동 성폭행이 피해자와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충남 대전에서는 집을 드나들며 선배의 딸을 수십 차례 성추행한 이모씨가 경찰에 검거됐고 경기 연천에서는 30대 남성이 ‘삼촌’으로 부르며 따르는 10살짜리 동네 여자아이 3명을 차례로 성추행한 사건도 있었다.

◆ 진술녹화의 힘 = 7월 부산에서는 B(5)양이 친구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두려움에 사건에 대해 얘기를 극도로 꺼리던 B양은 담당 여경이 2, 3일간 같이 지내며 친언니처럼 대하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이어 담당 여경은 B양을 놀이방처럼 아늑하게 꾸며 놓은 경찰서 진술녹화실에 데려간 뒤 편안한 분위기 조성에 힘썼고 결국 B양은 진술녹화실에 있던 성인 남자의 인형과 여아 인형으로 성추행 장면을 그대로 묘사했다. 아동 성폭행 사건에서 조사 기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드러낸 것이다.

밀양 사건은 여경을 불러 달라는 피해 여중생의 요구를 무시하고 대질신문 과정에서 고교생으로부터 욕설을 듣게 하는 등 성폭행 수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을 한꺼번에 드러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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