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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나눔 베푸는 서민이야말로 ‘노블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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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나눔 베푸는 서민이야말로 ‘노블레스’

입력
2004.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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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했던 또 한해가 속절없이 저문다. 극히 일부지만, 우리의 미래인 젊은이들이 수능시험 부정과 집단 성폭행을 자행하고, 경제 불황의 나락에서 서민들의 한숨에 설움만 겹쌓인 한해. 열린 국회라면서 구시대적 이념에 닫혀 ‘떼법’과 상쟁(相爭)만 일삼은 한해가 저물어간다.하지만 세밑의 구세군 자선냄비와 교통카드로 성금을 내는 젊은이에게서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사회의 화기(和氣)를 느낀다. 피땀의 세금을 가져간 정부가 ‘분배’의 구호만 되뇌는 동안 서민들은 얇은 주머니나마 기꺼이 비운다. 눈물의 ARS 숫자를 누르고 1%의 나눔을 실천한다. 생각해보면 로또 구입도 서민들의 기부행위가 아니던가.

누가 우리에게 기부문화의 뿌리가 없다고 했는가. 평생 아낀 돈을 선뜻 기부하는 애틋한 설렁탕 할머니도 있고 안타까운 포장마차 아줌마도 있으며 거금을 내고도 이름을 감추는 독지가도 있다. 직장인의 절반 정도는 평소에도 자선 활동을 하고, 국민 10명 중 8명이 기부한 적이 있는 우리 사회가 아닌가. 각종 준조세와 온갖 규제에 시달리면서도 거금을 기부한 기업들도 ‘나눔 문화가 아름답다’는 칭송을 듣는다. 하지만 연말의 기부금보다는 평소의 고용창출과 인재양성이 기업 이익의 올바른 사회 환원이 아닐까. 종업원의 주머니를 턴 기업이나 법인 명의가 아니라 기업가 개인 명의의 기부나 자선단체 설립이 활발하다는 소식이 아쉬운 대목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흔히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라 하지 않던가. 하지만 포괄적으로는 ‘양반은 양반답게 처신하라’는 뜻에 가깝다. 양반과 상민의 계급이 사라진 지금 누가 진정한 양반인가. 기부금 운영이 불투명한 단체, 모금을 핑계로 짭짤한 관리비 수익을 올리는 기관, 성금에 기대어 뒷짐을 지는 정부가 양반인가. 사회 분열의 획책을 통해 그들만의 판을 벌이면서 ‘가진 자’를 증오하기에 여념이 없는 자들이 양반인가. 가진 게 모자라면서도 나눔을 베푸는 서민들이야말로 우리사회의 참된 노블레스가 아니겠는가. 부자다운 부자, 학생다운 학생, 교직자다운 교직자, 정치가다운 정치가, CEO다운 CEO, 대통령다운 대통령, 공무원다운 공무원… 우리 모두가 ‘노블레스’로 처신하는 사회, 불우이웃과 배고픔이 없는 선진사회를 염원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소망일까.

또 다시 읊어본다.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절망의 끝이기에 희망이 보인다.

조영일 연세대 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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