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의 나라 미국에는 ‘인종의 용광로’라는 수식어도 따라 다닌다. 세계 각국의 이민족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화로에 섞여 융합하고 이 나라에 속해 일하며 나라가 돌아간다는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 보면 이보다는 ‘샐러드 보울’이 더 실제에 맞는 말이라는 사람도 있다. 갖가지 야채들이 한 보울 안에 들어가 있을 뿐 맛과 색깔은 제 각각이며 드레싱을 뿌려 버무려 먹으면 맛나는 요리가 되는 샐러드와 같다는 것이다.■ 299명의 의원이 모여 일하는 국회는 용광로일까, 샐러드 보울일까. 융합해 하나로 돌아갈 때 용광로일 것이고, 서로 다른 정파와 299개의 독립적 헌법기관이 타협의 조화를 이뤄 생산하는 정치를 펼 때에 샐러드 보울일 것이다. 둘 다 그런대로 국회가 기능을 할 때 경우이다. 그러나 우리 식 국회만의 뜻으로 하자면 용광로는 무엇이든 삼키는 정쟁의 용광로, 샐러드 보울은 독선과 아집, 혼란만이 가득한 집단을 칭하기에나 맞다. 그래도 요즘 국회를 말하자면 이 표현들로도 모자란다. 애당초 꽉 막혀 뚫어야 할 판인 데도, 그것도 모자라 틈새마다 쐐기를 박아대는 행태들을 무엇으로 꼭 집어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다.
■ 애써 노력하기 보다도 한 여성 초선의원이 어떤 인터뷰에서 ‘이상한 국회’라고 부른 것이 오히려 여러 가지를 말해 줄 수 있을 듯하다. 첫 의정생활에 대해 소감으로 밝힌 이 말은 당을 떠난 초선의 감상을 대변하는 것이다. 당과 당의 전면 격돌에 국회는 그 무대에 불과하고, 어느 싸움에선 초선들이 재선 삼선을 뺨치는 구태를 서슴지 않는 판―. 동료의원들 간 인간관계도 황폐화시킨다고 한 그로서는 ‘이상한 감상’에 놓이지 않을 수가 없겠다. 180명이 넘는 다른 초선들은 제 각각 어떤 감상들일까.
■ "닭 싸움이나 개 싸움도 룰이 있는데 국회에는 룰이 없다"는 말도 그 인터뷰는 전한다. 그러나 이 국회에는 룰이 없을 수밖에 없다. 닭 싸움이나 개 싸움을 말리거나 붙이는 데는 사람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것도 안 되기 때문이다. 어떤 때 정치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무자비한 승부이다. 이념이란 단어 조차가 무색한, 지금의 ‘이철우 논란’이 서로 사활적이지만 이건 애교다. 현대 정치사엔 암살과 테러까지 동원한 승부가 난무한다. 우크라이나에선 야당 대선후보 빅토르 유시첸코에 대한 여당측의 독살기도가 확인됐다는 소란으로 발칵 뒤집어졌다. 야당 후보에 대한 암살미수 사건인데, 사활도 이런 사활이면 무서운 정치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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