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석유 전쟁을 치르더니 이번에는 환율전입니다. 총성만 없을 뿐 가히 세계대전입니다.싸움을 건 쪽은 이번에도 미국이고 공격 대상은 아시아, 그중에서도 중국입니다.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에서 워낙 손실이 많으니까, 중국의 위안화를 평가절상 하라는 것이죠. 미국과 중국간 환율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한국입니다. 일본도 피해 당사국이지만, 그럭저럭 버틸만 합니다. 이미 세계 곳곳에 생산거점을 구축해 놓아 위험을 분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위안화 절상 압력을 받고 있지만, 위안화를 달러에 고정시켜두고 있어 오히려 ‘약 달러=약 위안화’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출 의존형 경제구조에다, 생산 기반도 주로 국내인 우리나라는 환율전쟁의 유탄을 피할 길이 막막합니다. 세계 환율전쟁이 왜 발발했는지 살펴보도록 하죠.
◆ 미국의 전쟁 명분
미국은 지금 아시아 각국 통화의 절상을 통한 경상적자 해결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막대한 재정적자와 함께 쌍둥이 적자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미국내 소비와 투자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됩니다.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국채 발행을 늘려야 하는데 이 경우 실질금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사실 미국의 쌍둥이 적자는 미국 만의 문제가 아니고, 전 세계의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미국 경제의 성장이 세계 경제를 견인했는데, 미국 경제에 제동이 걸리면 세계 경제도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지난해부터의 약 달러 부담을 주로 유로화가 짊어진 만큼, 세계 경제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라도 아시아 국가들이 비용 분담에 나서라고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그중에서도 눈엣가시가 위안화입니다. 올 1~10월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1,143억 달러로, 전체 무역적자(4,807억달러)의 25%에 달합니다. 중국이 벌어들이는 달러만 보면 위안화 가치가 30~40%는 올라야 정상인데, 중국 당국이 이를 막고 있어 무역적자가 늘고 있다는 시각입니다.
◆ 중국의 반격
중국의 반격도 만만찮습니다. 중국 고위 당국자들은 "미국내 경제 문제의 책임을 다른 나라에 전가하지 말라"고 맞서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확대는 미국의 확장적인 재정 정책과 낮은 저축률에 기인한다는 겁니다. 미국은 대규모 감세(1조7,000억 달러)로 미국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올려 놓았고, 이것이 수입 확대를 촉발했습니다. 또 가계·기업·정부 등 미국의 순국민저축률은 올 상반기 사상 최저 수준(0.7%)으로 떨어졌습니다. 중국이 물고 늘어지는 것도 이 대목입니다.
중국은 나아가 ‘물리력’을 동원할 조짐도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 당국은 부인하지만, 미국 국채를 중국이 팔아치울 거라는 관측입니다. 미국으로서는 치명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이 쌍둥이 적자에도 불구, 지탱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중국 일본 한국 등이 미국 국채를 사주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미국 국채 매도에 나서고 다른 나라들이 뒤따른다면 국채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또 걷잡을 수 없는 약 달러로 오히려 미국이 부메랑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 전쟁의 결말은
위안화 절상이 불가피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중국도 고정환율제를 계속 끌고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결말이 언제쯤 날 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립니다.
우선 내년 하반기쯤이면 위안화 절상이 단행될 거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미국은 중국이 항복할 때까지 밀어붙이기로 한 데다, 유럽연합(EU)과 일본도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위안화 절상으로 약 달러가 진정돼야 EU·일본도 숨통이 트입니다. 중국으로서도 경기과열·인플레를 막기 위해 위안화 절상을 단행할 수 있습니다. 위안화 절상으로 긴축효과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중국이 위안화 절상 압력에 굴하지 않는 이유는 실업문제와 낙후한 금융시스템 때문입니다. 농촌의 잉여 노동력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수출 진흥정책이 불가피합니다. 또 국내 금융시스템이 부실한 상황에서 환율이 자유롭게 변동하도록 내버려 뒀다가는 금융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설령 위안화가 절상돼도 그 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 위안화 절상되면 한국은
원화 환율이 안정될 거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아시아 각국의 통화 강세가 위안화 절상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측면에서 그럴 만도 합니다. 그러나 위안화가 절상되면 원화도 동반 절상될 수 있고, 위안화 절상 폭이 기대에 못미치면 미국이 약 달러를 계속 밀어붙일 공산도 큽니다.
산업적 측면에서 보면, 플러스 효과보다 마이너스 효과가 클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중국과 경쟁을 하는 제3국에서의 수출 증대보다 중국의 수출 둔화, 경기 둔화에 따른 대중국 수출 타격이 더 클 것이라는 얘기죠. 한국의 대중국 수출 가운데 70%가 중국이 수출을 위해 수입하는 원자재·부품 소재입니다.
중국을 경유해 미국으로 수출되는 한국 제품이나, 중국 내수를 대상으로 하는 국내 기업들도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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