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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師弟] (1) 박흥식 -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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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師弟] (1) 박흥식 - 이승엽

입력
2004.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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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엽이 올 한해? 완전 실패지 뭐."10일 경북 경산시 영남대 야구장. 이승엽(28·롯데 마린즈)과 박흥식(42) 삼성타격코치의 대화는 마치 타자와 투수의 대결처럼 팽팽한 긴장감으로 시작됐다. 박 코치는 작심한 듯 초반부터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사실 승엽이 일본 안 갔으면 했죠. 성격이 여리거든요. 경기 안 풀린 날엔 혼자 끙끙 고민하다 한숨도 못 잤을 거에요."

이승엽도 그냥 당할 수 없다는 듯 방망이를 곧추 세운다. "또 그러시네. 제 성격과 성적은 상관없어요. 실력이 모자랐던 것 뿐인데…."

유인구 하나 던질 법도 한데, 박 코치는 또 다시 스트라이크로 정면승부를 건다. "그럼 시즌 말에 그 쪼그라든 타격자세는 뭐냐. 얼마나 자신감 잃고 어깨를 움츠렸으면 방망이 잡은 손이 귀에 가 붙었더라."

졌다는 듯, 제자는 방망이를 내려놓는다. "그만 됐어요. 좋은 인생 공부한 셈 치죠."

두 사람이 사제의 연을 맺은 건 1996년 겨울 전지훈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코치는 당시 갓 삼성타격코치로 부임했고, 이승엽은 팔꿈치가 안 좋아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지 1년이 된 때였다. "승엽이는 타고난 타자였어요. 게다가 야구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죠."

그 해 겨울 이승엽은 박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매일 밤 700개가 넘는 공을 쳤다. 이승엽은 약점인 왼손 투수 공략법을 배우고 장타자로 변신했다.

특유의 외다리 타법도 이때 완성했다. 땀은 정직한 법. 97년 홈런왕과 MVP를 수상한 이승엽은 2003년 한 시즌 아시아 최다인 56개의 홈런으로 새 역사를 창조했다. "나만 편애한다고 코치님이 선수들한테 욕 많이 먹었죠." "별 소릴…. 그래도 덕분에 ‘이승엽 내가 키웠다’고 큰 소리 칠 수 있잖아."

둘만의 다른 추억을 물으니 "함께 밥 많이 먹었다"는 생뚱맞은 답이 돌아왔다. 역시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들이구나 싶은 순간, 이승엽이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99년 미국 훈련 때 방황하던 제게 코치님이 준 편지 기억나세요? ‘넌 야구할 때가 제일 멋지다. 쇠도 두드려야 강해진다’ 뭐 이런 내용이었는데 어찌나 닭살이 돋던지." 또 하나. 97년 오키나와 훈련 때 포지션 변경 불만으로 입이 나온 이승엽이 펑펑 눈물 쏟은 이야기다. "승엽이에게 야구 좀 한다고 벌써부터 건방 떠냐며 호통쳤죠. 믿었던 내가 그렇게 나오니 배신감 좀 느꼈겠죠."

홈런 14개와 2군 강등. 일본에 건너간 국민타자 이승엽의 초라한 올 성적표다. 헌데 최근 더 우울한 소식이 들렸다. 롯데 마린즈의 외야수 용병 영입이다. 외야는 이승엽이 내년에 맡을 포지션. 박 코치의 걱정에 이승엽은 짐짓 태연하다. "나만 잘하면 돼요. 프로가 괜히 프로입니까. 전 찬밥 더운밥 안 가립니다."

인터뷰 후 이승엽과 박 코치는 오랜만에 함께 볼배팅 연습을 했다. "세월은 못 속이나. 코치님 볼 많이 약해졌네요." 공은 펑펑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담장으로 넘어갔고 두 사람의 힘겨웠던 2004년도 그렇게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경산=김일환기자 kevin@hk.co.kr

●이승엽은

고향은 전남 강진이지만 자란 곳은 대구. 경북고를 나와 1995년에 삼성에 투수로 입단해 타자로 전향했다. 97, 99, 2001~03년에 홈런왕과 MVP를 거머쥐었다. 올해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마린즈에 입단해 2할4푼의 타율(홈런 14개)을 기록했다.

●박흥식은

대구에서 태어나 한양대를 거쳐 1985년 프로야구 MBC 청룡에 입단해 93년 LG 트윈스에서 선수 생활(외야수)을 마감했다. 통산 660경기 출장에 타율 2할5푼6리. 친화력과 리더십을 인정 받아 96년 삼성에 코치로 들어가 타격코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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