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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이철우의원 전력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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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이철우의원 전력 시비

입력
2004.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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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 전력시비로 국회가 시끄럽다. 이번 사태는 역대 국회에서 벌어진 추태 중에서 최악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제대로 싸울 능력도, 타협할 능력도, 시대정신을 읽을 능력도 없는 저수(低手) 정치의 너절함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거리에서 머리채를 쥐고 싸우는 수준이니 국회의사당이 아깝다.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은 92년 북한 노동당에 입당해 지금까지 암약하고 있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같은 당의 박승환 김기현 의원도 ‘간첩’ ‘국회 프락치’ 등의 용어를 껴?가세했다.

온 국민이 경악하는 가운데 한나라당의 공세는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김덕룡 원내대표까지 공격에 가담했다. 그러다가 뒤늦게 이 의원 관련 사건의 법원 판결문을 읽어 본 주성영 의원은 ‘간첩’이나 ‘암약’표현은 과장됐다고 발뺌했다. 최소한의 확인도 없이 국회의원을 암약중인 간첩으로 몰아붙인 정당이 과연 공당인가.

열린우리당은 즉각 ‘수구세력의 백색 테러’라고 맞받아쳤다. 그리고 법원판결문을 검토한 후에는 ‘고문에 의한 조작’이었다고 우기고 있다. 판결문을 공개하며 이 의원에게 불리한 내용을 누락시키기도 했다. 사건이 일어난 1992년에도 고문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는 있지만 법원판결까지 부인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이철우 의원은 서울시립대 재학 중 전대협 1기 멤버로 활약하다가 반미청년회 사건으로 제적됐고, 92년 민족해방애국전선 사건에 연루돼 4년간 복역한 전력이 있다. 출소 후 고향인 포천에서 시민운동을 하다가 99년 사면복권된 그는 지난 총선에서 당선됐다.

그의 전력은 비밀이 아니다. 선거법에 의해 입후보자의 범죄경력을 공개하고 있으니 유권자들도 그의 전과를 알고 투표했을 것이다. "노동당기와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 앞에서 민애전 입당식을 했다"는 등의 구체적인 판결문 내용은 몰랐더라도 이적단체 가입죄로 4년이나 복역했다면 상당한 친북행위가 있었으리라고 보는 게 상식이다.

한나라당이 12년 전 사실을 들춰내어 ‘암약중인 노동당원’이라고 공격한 것이나 열린우리당이 ‘고문에 의한 조작’이었다고 우기는 것은 모두 군사독재 시절의 잔재다. 여야의 얼굴만 바뀌었지 행태는 조금도 차이가 없다. 툭하면 국보법을 들고나와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던 공화당과 민정당, 고문조작에 쫓기던 운동권의 피해의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나라당은 시대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고 있다. 과거의 수많은 국보법 악용사례를 생각한다면 자숙해야 할 텐데, 어떻게 감히 동료의원을 암약중인 간첩으로 몰수 있는가. 오늘 또다시 색깔론을 내세워 반사이익을 얻으려 했다면 어리석다. 국보법 폐지를 막으려면 대안을 제시하며 당당하게 나와야 한다. 협상을 거부한 채 이런 식으로 찬물을 끼얹어 국면전환을 노리는 것은 비겁하다.

국회의원이 과거에 친북활동을 했다는 것은 국민으로서 기분 나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철우 의원은 "옥중에서 마르크시즘과 주체사상을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사면복권됐고, 유권자들의 지지로 당선됐다. 당선 후에도 다른 운동권 출신들과 달리 중도적 노선을 걷고 있다. 12년 전 전과를 들춰내어 다시 단죄하겠다면 그 많은 국회의원들의 전과는 어떻게 할 셈인가. 친북은 무겁고 돈 먹은 죄는 가벼운가.

이번 사태는 여당이 무리하게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났지만, 국보법과는 별개의 문제다. 이 일은 국보법 폐지안이나 존속안에 특별히 유리할 것도 불리할 것도 없다. 한나라당은 깨끗이 사과하고, 열린우리당은 사건전모를 밝힌 후 국민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 더 이상 싸울 일이 아니다.

17대 국회 역시 무능하고 구악에 젖어 있다면 앞으로 3년 이상 어떻게 참아야 할지 걱정이다. 여야는 임시국회에서라도 좀더 성실해야 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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