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만난 아이에게 물었다."커서 뭐가 되고 싶냐?"
"왕이요!"
"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잖아요!"
왕이 있으려면 백성이 있어야 한다. 계급이란 게 상대적인 개념인데, 따르는 백성 없이 어떻게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있겠는가.
"네가 왕이면 네 친구들은 백성이냐?"
잠시 생각하던 아이, "네"하고 대답한다.
"친구들은 뭘 하는데?"
"내가 시키는 대로 해요."
나도 참 쓸데없이 끈질기다.
"네가 시키는 건 뭐든지 다?"
"네!"
부단한 노력으로 치세를 이룬 왕은 백성들에게서 존경 받지만, 제 맘대로 폭정을 휘두른 왕은 백성들 손에 쫓겨난다. 그러니까 백성은 왕에게는 통치의 대상인 동시에 근거인 셈이다. 이건 아주 단순한 역사적 진리다.
"친구들이 네 말 듣기 싫어서 너랑 안 놀면? 그래도 ?왕이냐?"
퉁명스런 표정으로 대답을 고민하던 아이, 다 왔다며 버스에서 내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역사적 진리를 논하기엔 우리의 만남이 너무 일렀나 보다.
왕이 되고 싶은 어릴 적 희망을 고스란히 간직한 어른들이 참 많아 보인다. 극장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어른들, 새치기를 생활력으로 착각하는 어른들, 내 자식 소중한 줄만 아는 어른들, 그리고 국회에 계신 일부 어르신들. 제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 들고 남들이야 어떻든 신경도 쓰지 않으니, 나 같은 일반 백성 눈에 곱게 보일 리 만무하다.
아이야, 왕이 되려거든 훨씬 더 좋은 왕이 되어라. 네가 왕이 되어서 네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 들면, 아저씨 같은 백성들은 너무너무 피곤하단다.
황재헌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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