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전의 공신들이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는 것은 미국 정치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선거 때 혁혁한 공을 세워 정부에 입성한 대통령의 측근을 일컬어 조지아 사단 캘리포니아사단 텍사스 사단이란 말이 나돌 정도다. ★관련기사 A5면9·11 후 신설된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낙마한 버나드 케릭 전 뉴욕경찰청장도 조지 W 부시 대통령 재선을 위해 발 벗고 뛴 공신이다. 그가 이라크 전쟁 비판자를 향해 "정치적 비판은 우리 적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쏘아댔던 연설은 아직도 미국인들의 뇌리에 박혀 있다.
무엇보다 그에겐 부시 재선의 ‘특등 공신’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의 후원이 있었다. 줄리아니는 자신의 경호실장이었고 9·11 현장의 동지이기도 했으며 사업의 동업자인 케릭을 부시 대통령에게 천거하면서 "나를 대하듯 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후문이 들린다.
그 간청이 효력이 있었는지 부시 스스로가 9·11의 상징을 필요로 했는지 알 수 없으나 케릭은 맨해튼 순찰로 경찰 경력을 시작, 미 국토안보의 총수로 지명되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문제는 공직 진출에 따른 검증이다. 미국에서 대통령이 제 사람 데려다 쓰는 것은 용납되는 일이지만 거기에는 혹독한 파헤치기 과정이 따른다. 그러나 조속히 2기 내각 인선을 매듭지으려는 부시의 조급증으로 까다롭기로 소문난 내부 검증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비판론이 일고 있다. 더구나 미 언론은 선거 공신에 대한 예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흔들린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새 정부 출범 때마다 되풀이되는 우리의 인사 파동이 미국 땅에서 재연되는 듯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새삼 정실에 좌우되지 않은 인사 원칙과 검증의 중요성을 떠올려 본다.
김승일 워싱턴 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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