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는 피부가 약해서 물기가 마르면 피부가 타서 죽어요. 육지로 밀려 온 고래들을 재빨리 물기 있는 천으로 덮어 주고 피부에 수분을 공급해 주면 살아나기도 하지요. 보통 3~4시간 안에 응급처치를 해야 합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그나마 비를 맞고 오래 버티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치료해서 돌려보내려 해도 이미 살려는 의지가 없는 녀석도 많아요. 참 안타깝지요. 그나마 겨우 살아난 녀석들과 눈을 마주하고 녀석들을 느낄 때 그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고래 엄마’로 통하는 해양생물학자 로즈메리 게일즈(42) 박사는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해변으로 밀려들어 떼죽음 하는 고래를 좀더 많이 구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주 1차산업·수질·환경국 자연보전팀장으로 세 아이의 어머니인 그에게 올 여름은 40 평생에 가장 길고 힘들고 보람 있는 여름이었다.
전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했듯이 지난 11월 30일과 12월 1일 이틀에 걸쳐 호주 남동부 태즈메이니아 섬 일대와 뉴질랜드 해변에 고래떼 수백 마리가 몰려들었다. "이런 일은 가끔 있지만 이번처럼 만 24시간 동안 백여 마리씩 세 차례나 떼로 몰려든 적은 없었습니다." 200마리 정도는 죽었지만 그나마 게일즈 박사의 지휘로 파일럿 고래 24마리가 바다로 돌아갔다.
그는 자연보전팀을 이끌면서 주 공원야생관리국 및 지역 경찰과 소방본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고래 살리기 작업을 총괄한다. 고래 아래 바다 방향으로 굴착기로 홈을 파고 피부가 마르지 않도록 소방호스로 물을 뿌려 준다. 그런 다음 끌어내리고 배로 밀고 해서 바다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11월 30일에는 밤샘 작업을 해서 중간쯤 자란 향유고래 한 마리(길이 9c, 무게 20톤)를 바다로 돌려보냈다. "몇 년 전에는 범고래 떼가 몰려들어 수백 명이 나가 작업을 했어요. 그 때 되돌아가는 녀석들을 보면서 모두들 함께 부둥켜 안고 울었습니다."
고래가 백사장으로 몰려와 떼죽음 하는 이유는 여러 설이 있다.
우선 최근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차가운 서풍이 해류에 영향을 주고 영양물질이 풍부한 이 해류가 해변으로 방향을 틀기 때문에 해류를 따라가던 고래떼가 해변에 좌초한다는 것이다. 석유·천연가스 탐사 회사들이 진동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이 고래의 방향감각을 교란시켰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게일즈 박사는 "고래는 가족 가운데 한 마리가 곤경에 처하면 모두가 몰려들어 구하려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떼죽음이 가능하다는 설이 그나마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영국인인 게일즈 박사는 어릴 때부터 장난감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 귀여운 외모에 뒤뚱뒤뚱 걷는 펭귄을 TV에서 보고 펭귄 관련 서적은 모조리 읽었다고 한다.
17세 때 해양포유류 연구로 유명한 호주로 유학을 와 태즈메이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까지 멸종위기종인 큰 새 알바트로스와 펭귄에 관한 저서를 내는 틈틈이 생물학자인 동료 7명과 함께 자비를 털어가며 해양동물 살리기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알바트로스나 고래처럼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은 연구하면 할수록 신비스럽습니다. 그러나 모르는 것이 많아 오기와 집착이 더 생깁니다. 하루 빨리 원인을 찾아내 죽어가는 고래가 더 이상 없도록 해야지요."
조윤정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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