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시점에서 사람은 혼자 살게 되어 있다는 말로 나를 위로했지만 그 중에 혼자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외톨이로 남은 ‘나’의 이 심란한 독백처럼, 조경란씨의 새 소설집 ‘국자이야기’에 나오는 여러 화자들은 관계,소통의 문제를 품고 사는 이들이다. 그 문제들은 ‘정해진 시간에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는’ 등의 일상적 리듬 혹은 균형을 가치로 여기며 거기에 자신을 강박’( ‘국자이야기’)하거나, ‘가족들을 보고 있을 때면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고 손발이 차가워지고 다리에 힘이 빠지는’ (‘잘 자요, 엄마’)식의 공포증상에 시달린다
관계, 소통의 어려움은 곧잘 말(대화)의 문제로 표출된다. ‘생전의 아버지가 나에게 남겨준 것이 있다면 말을 하는 것의 어려움과 말을 내뱉고 났을 때의 책임감 같은 것일 게다.’ ‘어쩌면 말이란 건 결핍이 아니라 과잉일지도 모르겠다.’ ‘(말이 많아진)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아예 ‘나의 말’을 하려 들지 않기도 한다. 일기장에 선생님의 칭찬만 늘어놓다 ‘지겹지도 않냐? 이제부턴 제발 니 얘길 좀 써라’며 야단맞은 경험이 있는 ‘그’는 유년의 그처럼 남 얘기만 해대는 ‘그녀’에게 말한다. ‘노란 아이들의 집(고아원) 애들이나 사촌 얘기 말고 이제부턴 당신도 당신 자신의 얘길 좀 해봐.’
관계의 결핍이 대개 ‘나’, 즉 ‘나’의 세계와 타자에 대한 인식의 문제에서 비롯되듯, 조경란씨가 8편의 단편소설 속 화자들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그와 관련된 것들로 읽힌다. 작가는 자칫 관념적으로 흘러 난삽해지거나, 교훈처럼 따분해지거나, 정형화하기 쉬운 주제를 자전성과 허구성, 리얼리티와 환상성을 조화시키며 다양하고 경쾌하게 전개하고 있다. 그들이(혹은 독자들이) 찾게 되는(혹은 유추하게 되는) 해답은 결코 어렵지도 가볍지도 않다.
‘그러고 보니까 당신, 아무 말도 안 했구나. 내 얘기만 했네. 미 미안해. 하지만 이 이게 내 이야기의 끝 끝은 아 아니야. 난 한번도 모 못 해본 마 말들이 너 너무나 많아.… 내 시 심장 소리는 내가 모 못 듣는 거잖아.… 내가 마 말을 하는 건 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야. 말을 해…이 이젠 다 당신 차례야.’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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