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 경치구경이 아니라, 인생이나 사랑으로 좀 이색적인 여행을 떠나보자. 그렇게 골치 아픈 여행을 어떻게 하느냐고? 산다는 게 여행인데 떠나긴 뭘 떠나느냐고? ‘경험의 지도’ ‘사랑의 지도’를 펴 들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이 책은 인생의 중요한 경험과 사랑의 여정을 지도로 표현한 아이디어만으로 ‘50점은 먹고 들어가는’ 기발한 책이다.네덜란드의 디자이너들과 자유기고가, 심리학자가 함께 작업해 만든 이 책에는 인생의 여러 모습, 사랑의 갖은 표정이 담겨 있다. ‘경험의 지도’는 ‘지식’ ‘습관’ ‘집’ ‘권태’ ‘건강’ ‘망각의 섬’ ‘정열’ ‘불행’ ‘쾌락’ ‘죽음’ 등 21가지 주제로 나누어 그 주제를 음미하는 글을 쓰고, 같은 숫자의 지도 그림을 붙였다.
첫 주제 ‘비밀’에서 기고가로 활동하는 데이비드 위너는 진 해크만이 주연한 영화 ‘대화(The Conversation)’, 제리 스프링어의 TV쇼 ‘빅 브라더’, 사적인 통화기록만을 모아 만든 미국 책 ‘나는 듣는다(I Listen)’에다 D H 로런스의 시까지 ‘비밀’과 연관된 숱한 사례들을 사색을 위해 종횡무진 인용한다. 결론은 ‘비밀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람들은 더 외로워지고, 서로의 관계는 느슨해진다.’ 곁들인 지도에서 ‘비밀’은 ‘가능성의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다. 이 섬에는 ‘감춰진 상처’ ‘뼈아픈 진실’ 등 추상적인 개념의 마을이 있는가 하면, ‘X파일’ ‘도피처’ ‘정찰’ 등의 성이나 잠수함도 있다.
다음 주제 ‘지식’의 지도 중에 있는 작은 섬 ‘페르마’에는 ‘마지막 정리’라는 성이 있고, 섬 가까운 바다에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풀어낸 앤드루 와일스 기선이 통통 연기를 내뿜으며 떠 있다.
방대한 교양을 뽐내는 위너의 문장에다 개념과 고유명사가 널린 지도 위에서 독자는 약간의 상상력만 발휘하면, 참신하게 인생을 음미할 특별한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게다. ‘사랑의 지도’도 체제는 비슷하지만 그만한 재미가 없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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