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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개구리랑 같이 학교로 갔다 - 상동초등학교 어린이들 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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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개구리랑 같이 학교로 갔다 - 상동초등학교 어린이들 시 모음

입력
2004.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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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실-내리다가/확 온다./산을 보니/안개로 덮여있고 /강도/ 안개로 둘러싸여 있다. /순둥이는 집에 들어가서/배 내고 잔다./비가 오면/세상이 한가하다."(‘비 2’ 전문)

한 폭의 수묵 산수화를 보는 듯한 이 멋진 시는 놀랍게도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의 작품이다.

"개가/뒷발로/얼굴을 긁는다.//먼지가/바바박/일어난다.//개 몸을/퍼벅/털어주고 싶다."

(‘개’ 전문)

개가 얼마나 힘들어 보였으면, 직접 털어주고 싶었을까. 안쓰러운 마음을 군더더기 하나 없이 쏙 뽑아낸 이 시도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가 쓴 것이다.

경북 밀양의 상동초등학교 어린이 20명이 쓴 동시 모음 ‘개구리랑 같이 학교로 갔다’ 에는 이처럼 보배로운 시가 가득하다. 지난해 5학년 한 반으로 만나서 올해까지 2년간 이승희 선생님과 함께 공부한 아이들이 쓴 것으로 모두 121편이 실렸다.

"나는 이래 못쓰겠는데, 우째 이리 잘 썼노."

글쓰기를 지도하고 책을 엮은 교사 이씨의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감탄스런 시가 많다. ‘어린이는 모두 시인’ 이라더니 과연 그렇구나 싶다. 솔직하고 생생한 표현, 핵심을 단번에 끌어내는 명쾌함, 사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마음이 즐거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주변의 꽃과 풀, 벌레를 보면서 느낀 점을 노래한 시도 있고, 농사일을 도와 땀 흘리면서 쓴 것도 있고, 학교나 집에서 동무들 식구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쓴 것도 있다. 건강하면서 거짓없이 참된 이 시들을 읽노라니 마음이 절로 맑아지는 듯하다.

이 책은 천편일률의 정형화한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개성이 살아있고 자유롭게 숨쉬는 시들을 보여준다. 개구리 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자전거 페달과 손잡이에 달라붙어 꼼짝 않는 녀석 때문에 ‘할 수 없이/개구리랑 같이/학교로 갔다’는 재원이, 갑자기 길섶에서 튀어나온 개구리더러 ‘나는 개구리 지 살리려고/조심조심 가는데/니는 내 마음 아나?’고 묻는 창희, 바지 끝에 딱 붙어서 따라온 개구리를 보고 ‘어째 내 다리에 탈 생각을 했지?/진짜 신기하네’ 라고 감탄하는 호철이, 변기통에 올라 앉은 개구리가 딴 데로 가길 기다리다가 급해서 옆에다 오줌을 쌌다가 ‘오줌 밖에 눴다고/할머니한테 오지게 혼났다’는 상우…. 천진스럽거나 익살맞은 이 시들은 개구리 한 마리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착한 마음이 깔려있어 더 예쁘다.

삽화로 들어간 아이들 그림솜씨도 놀랍다. 단순한 연필 소묘들이지만 자연스럽고 생기가 넘친다.

이런 시를 쓰고 이런 그림을 그리기까지 무슨 비결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교사 이씨는 "기술적 문제보다 더 중요한 건 삶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라며 "관심 있게 보고, 천천히 보면 남들이 놓치는 것을 시로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부러 지어내지 않고 본 대로 들은 대로 느낀 대로 자기 말로 쓰게 하면, 아이들은 감만 잡으면 시를 잘 쓴다는 것이다. 교직생활 20년 동안 아이들과 글쓰기 공부를 해온 그는 "아이들은 시를 쓰면서 마음을 키우고 세상 보는 눈이 깊어진다. 글쓰기는 단순히 국어 교과의 하나가 아니라 삶을 가꾸는 교육"이라고 강조한다. "아이들 하나하나를 생각하면 모두 보물 같고 가슴이 찡하다"는 그는 "아이들이 시 쓰는 마음을 잃지 않고 자라면 좋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이 어린 시인들에게 이 책은 더없이 소중한 졸업선물이 될 것 같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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