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그제 "내년 상반기까지는 경기침체가 계속되겠지만 하반기부터 U자형 회복터널을 지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 정부당국자들로부터 "경기가 곧 바닥을 찍고 좋은 세상이 온다"는 양치기소년식 거짓말을 워낙 많이 들어 선뜻 신뢰가 가지 않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워낙 곤궁하다 보니 한 가닥 기대를 하게 된다.문제는 앞날을 예고하는 지표의 질(質)이 한결같이 너무 나쁘다는 것이다. 민간소비가 최근까지 2년 연속 떨어지더니 내년 상반기의 경기와 생활형편에 대한 가계의 기대심리는 외환위기 직후보다 더 얼어붙었다. 만성적인 고용불안 속에 7.2%로 높아진 청년 실업률은 내년에 얼마나 치솟을지 짐작하기조차 힘든다. 수출 물가 환율 유가 등도 전혀 우호적이지 않다. 오죽하면 박 총재도 "4%든, 5%든 성장률 수치와 관계없이 민생의 어려움이 앞으로 얼마나 더 갈지 알 수 없다"고 말했을까.
미래가 불안하니 가계가 지갑을 닫고 기업이 투자의욕을 잃는 것은 당연하다. 가진 사람들마저 국내에선 돈을 풀지 않고 대기업들은 수출로 번 돈을 방어용으로 그저 쌓아 둔다. 노후생활에 대한 보장이나 기업가 정신을 북돋우는 인센티브가 없고 정책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답은 자명해진다. 정책당국자들이 머리를 맞대 일관되고 설득력 있는 경기회복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기업과 가계가 이를 믿도록 정책을 펴는 것이다. 설득을 시키지 못하면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개혁 청사진이나 입법이라도 우선순위와 절차가 흐트러지면 반시장적 역효과만 낳는다.
그나마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 등 종합투자계획을 시행하면 내년 하반기부터는 체감경기가 호전될 것이라고 한다. 경기회복의 모멘텀을 확보하려면 그런 불씨를 소중히 다뤄 경제주체들이 자신감을 갖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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