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던 이철우 열린우리당 의원이 북한 조선노동당에 가입했다는 주장에 대한 당시 재판부의 판단은 명확하지 않다. ‘민족해방 애국전선’(민해전)이라는 ‘반국가단체’에 가입한 혐의는 인정됐으나, 이 단체가 조선노동당과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서는 공소사실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반국가단체 가입은 인정 중부지역당 사건은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인 이선실이 북한의 대남공작원 10여명을 지휘, 재야와 대학가의 주사파 및 좌익세력을 규합해 과거 남로당과 같은 성격의 남한 내 거점으로 남한 조선노동당을 구축했으며 중부지역당은 이 당의 4개 지역당 중 하나라는 1992년 10월 안기부의 수사발표로 처음 공개됐다. 안기부는 중부지역당 총책으로 지목된 황인오씨가 북한을 방문, 조선노동당에 가입한 사실과 북한의 지령문 등을 근거로 이들이 조직한 민해전이 바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92년 10월 ‘반미청년회’ 활동을 함께했던 양홍관 민해전 강원도위원장의 추천으로 반국가단체인 민해전에 가입한 뒤 양씨에게 학생운동 관련 40종의 도서 목록을 전달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93년 3월 1심 재판부는 혐의를 모두 인정해 징역 5년 및 자격정지 5년을 선고했다. 4개월 뒤 항소심 재판부도 혐의는 모두 인정한 채 연령, 가입 동기 등만 고려해 징역 4년으로 감형했고, 93년 10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이 의원은 4년간의 옥고를 치른 뒤 99년 2월 복권됐다.
검찰의 공소사실에는 이 의원의 민해전에 가입한 것 외에 조선노동당에 가입했다는 내용은 없다.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이었던 황씨는 옥중 수기에서 이 의원을 포함한 10명이 당시 노동당에 가입했다고 밝힌 바 있으나, 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민해전이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이라는 사실은 나를 비롯한 조직의 최고위 인사 3명만 알고 있었으며 나머지 조직원들에게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며 "이 의원은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감옥에서 원고를 쓴 뒤 아내에게 전해달라며 영치 담당자에게 줬는데 누군가 동의 없이 가져가 아내와 계약한 뒤 출간했다"며 "이 의원을 조선노동당 가입자로 적시한 도표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 주체사상 신봉 행적은 뚜렷 1심 판결문에는 이 의원이 가입한 민해전이 조선노동당의 대남 선전기구인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의 지하당이라는 사실이 명시돼 있고, 이 의원이 주체사상을 신봉한 사실은 분명히 드러나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의원은 92년 4월 양홍관씨의 안내로 서울 중랑구 망우동 지하방에서 노동당기와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걸어 놓고 민해전에 가입했다. 이 의원은 ‘수령님께 무한히 충직한 전사’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주체 혁명가’가 되겠다는 등의 선서를 한 것으로 돼있다. 또 ‘강재수’라는 가명과 암호명 ‘대둔산 820호’를 부여 받았다.
이 때문에 이 의원이 과연 민해전과 북한 노동당과의 직접적인 연계 여부를 몰랐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 의원의 판결문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황인오씨의 항소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민해전이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이라는 검찰과 안기부의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물론 황씨의 말대로 이 의원이 민해전과 북한 노동당의 관계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는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 이철우 의원은 누구
한나라당으로부터 북한 조선노동당 가입 의혹이 제기된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은 1980년대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전개한 NL(민족해방) 계열 386 운동권 출신의 초선이다.
79년 포천 관인고를 졸업한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84년 서울시립대 영문과에 입학, 학생운동과 인연을 맺은 뒤 86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멤버로 활동했다. 88년 반미청년회 사건에 연루돼 제적됐으며 92년 이번에 논란이 된 ‘민족해방애국전선’에 연루돼 4년간 복역했다.
96년 출옥한 이 의원은 고향인 경기 포천으로 돌아와 교회의 중등부 교사를 시작으로 한탄강네트워크 등의 지역 시민단체 활동을 해왔다. 99년 사면복권된 이 의원은 올 4·15 총선에서 지역 내 경선을 통해 우리당 후보가 됐다.
이 의원은 "학생운동을 하면서 마르크스와 주체사상 서적도 읽었지만, 감옥에서 이런 사상들이 생명이 다했다고 정리했다"며 "지역에 돌아와 교회 집사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민들에게 모두 해명해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대학 입학 전과 출소 후 농사를 지은 전공을 살려 농림해양수산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 의원은 386 운동권 출신으로서는 유일하게 당내 ‘안정적 개혁을 위한 모임’에 가입해, 중도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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