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까지 백기사로 나선 것인가.’외국계 자본의 경영권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국내 기업들끼리 지원을 하는 이른바 ‘백기사’(White Knight·제3의 우호세력)가 9월 이후에만 5차례 출현하는 등 토종기업 간 동맹이 늘어나고 있다.
9일 증권가와 재계에서는 삼성전자의 SK 백기사설(說)이 나돌았다. 전날 삼성전자가 2,500억원의 여유자금을 사모펀드에 투자해 우량주 중심으로 주식을 매입하겠다고 공시한 사실과 관련한 것이다. 굿모닝신한·한누리증권 등 증권사들은 "삼성전자가 SK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백기사 역할을 맡으려는 것"이라고 관측했다.
삼성전자 같은 초우량기업이 고위험의 사모펀드에 투자한 것 자체가 대단히 이례적이고, 사모펀드는 특정기업 주식을 간접적으로 대규모 취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점 등에서 이 관측은 신빙성을 얻고 있다. 삼성전자의 사모펀드 투자금액은 SK주식 382만주에 해당(지분율 3%)하는 것으로 그동안 소버린 등 외국계의 위협을 받아온 SK의 경영권 안정에 큰 도움이 된다.
앞서 9월 이후 대한해운, 삼성물산 등이 잇따라 다국적 자본의 표적이 되면서 국내기업 간 백기사 동맹이 속속 등장했다.
지난달에는 포스코가 대한해운의 백기사를 자청하고 나섰다. 노르웨이계 골라LNG가 대주주인 이 회사의 지분 2.17%를 포스코가 매입해 우호세력으로 지원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는 군인 출신인 양사 창업자 사이의 끈끈한 우정, 그리고 양사 간 안정적인 거래선 확보라는 실리도 물론 작용했다.
다국적 자본에 맞선 국내 기업들의 동맹은 2000년 당시 포항제철(현 포스코)이 SK텔레콤에 신세기통신 지분 27.7%를 넘겨주는 대신 SK텔레콤 지분 6.5%를 넘겨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해 말에는 소버린의 경영권 도전에 맞서 SK가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을 비롯한 우호세력에게 자사주 10.4%를 매각했다. 당시 백기사 행위에 대한 위법성 시비가 일었으나 법원은 합법 판결을 내렸다.
팬택앤큐리텔은 지난해에 이어 이달 초 역시 SK의 백기사로 나서 이 회사 지분을 매입했다. 그 결과 SK로서는 경영권 방어지원세력을, 팬택앤큐리텔으로서는 SK계열사의 납품량을 늘리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윈윈이 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SK 백기사설에도 그 배경에는 휴대폰시장을 놓고 그간 서먹서먹했던 양사(계열사)의 관계 회복을 위한 의도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 신기영 수석연구원은 "올해 있었던 백기사 시도는 대부분 양사의 주가에도 중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면서도 "회사의 이익을 제3의 회사에 전용한다는 측면에서 소액주주 사이에 ‘주주이익 침해’ 시비 우려가 있어 많은 기업들이 백기사 행위가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백기사 동맹은 외국계 투기자본에 맞선 토종기업들의 정당한 자구노력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일반적이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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