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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둥그스름의 미학

입력
2004.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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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은 완전함의 상징이다. 기하학적으로 완전한 도형이기도 하지만 생활주변의 모든 것을 통해 그것을 입증한다. 태양 지구 같은 자연계의 대부분이 원의 형태를 지니고 있고 바퀴 그릇 등이 원형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원은 가장 안정적이며 그 속에 힘을 지니고 있다. 생명의 원천인 씨앗들이 원형이라는 사실은 원의 상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군에서 행군을 할 때 우수한 집단은 행군길이가 길지 않다. 처지는 병사가 생기면 동료가 대신 배낭과 총을 들어주어 대열을 유지해간다. 힘이 넘친다고 앞서지 않고 낙오병 없이 똘똘 뭉쳐 목적지에 다다른다. 그렇지 않은 집단은 대열이 길어지다 결국 선두와 후미가 끊어지고 만다. 이를 통해 지휘관들은 선두와 후미의 거리가 좁을수록 효율적이란 것을 깨닫는다. 원형은 아니더라도 원형에 가까울수록 그 조직은 힘을 발휘하고 활력이 넘친다.

10여년 전 대부분의 사람이 어느 계층에 속하느냐는 설문에 ‘중층’이라고 답했다. 상층이나 하층을 선택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이었다. 실제로 1994년 통계청 사회통계의 계층조사에서 중층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60.4%로, 상층(1.4%) 하층(38.2%)보다 많았지만 심리적으로는 80%정도가 중층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2003년 계층조사에서는 중층 56.2%, 상층 1.4%, 하층 42.4%로 나타났다. 상층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으나 중층은 엷어지고 하층은 두터워졌다.

그러나 지금은 어떨까. 아직 올해 조사자료가 나오지 않아 모르지만 중층이 급격히 엷어지고 하층이 두터워진 결과가 나올 것이다. 요즘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어느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하면 ‘한때는 중산층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는 반응이 주류다. 적어도 심리적으로는 중산층에서 밀려났거나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통계청의 계층조사 결과는 항아리형이지만 국민들이 느끼기로는 허리가 홀쭉한 모래시계형이다. 항아리는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둥그스름한 타원형으로 안정되고 풍요로워 보인다. 그러나 가운데가 홀쭉한 모래시계 형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언제 분리될지, 깨질지 모른다.

모래시계형 계층구조는 극단적 양극화로 사회통합을 약화시키고 사회비용을 높이며 정치적으로 위기상황을 초래한다는 게 통설이다. 정권마다 중산층 육성을 부르짖는 것은 중산층이 건전한 수요기반 및 안정적 세수원으로서도 중요하지만, 국가 체질을 강화하는데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허리가 튼실한 항아리형 계층구조가 복원되지 않고서는 사회안정과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참여정부 들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소득 양극화다. 통계청의 3·4분기 자료에 따르면 도시근로자가구 중 소득 상위 10%의 월평균 소득(742만3,057원)이 하위 10%(82만814원)의 9.04배로 작년동기(8.67배)보다 격차가 더 벌어졌다. 농어촌을 포함하면 상위 10%의 월평균소득(720만600원)이 하위 10%(47만8,141원)의 15.06배나 된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의 ‘80/20법칙’을 무색케 하는 기현상이다.

극도의 양극화현상은 기하학적으로 보면 원형과 멀어지는 데서 비롯된다. 중심이 가운데 있지 않고 양쪽으로 갈라지면 구심력 대신 원심력이 강해져 결국 분열과 대립만 자초할 뿐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 모양이다. 상층과 하층의 가교역할을 하며 중심을 잡아줄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국가경영을 책임진 사람들에게 절실한 것은 바로 완벽한 원은 아니더라도 둥그스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철학이다. 중산층을 복원시키지 않고선 그 무엇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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