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당시 보다 더 살기 힘들었다는 2004년. 경기 침체의 주원인으로 지적될 정도로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는 꽁꽁 얼어붙었다. 과연 어떤 제품들이 이들이 꽉 걸어잠근 지갑을 열게 하는데 성공했고, 또 실패했을까. 백화점 할인점 등 각종 유통업체들이 선정한 ‘2004년 히트상품’을 통해 올 한 해 소비자들의 소비동향을 살펴본다.◆ 역시 싼 게 미덕
엥겔계수가 4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는 통계청의 발표에서 알 수 있듯이 식품류는 불황 속에서도 할인점에게는 최고의 효도상품이었다. 이마트 롯데마트 등 각 할인점의 히트상품 목록에는 쌀, 라면, 커피 등이 가장 윗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올해에는 식료품 구입시 ‘조금 번거롭더라도 싼 가격에 양이 많은’ 제품을 구입하려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마트에 따르면 해마다 두자리 수 성장을 보인 즉석밥 매출은 1% 신장하는데 그친 반면, 쌀은 매출이 9%나 신장했다. 라면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양이 많은 봉지라면(매출신장률 22%)이 컵라면(6%)보다 더 잘 팔렸다. 맥주도 병맥주보다는 페트병 맥주(30%)가, 아이스크림도 가격이 비싼 컵형(2%)보다는 바형(61%)이 많이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과일도 g당 가격이 저렴한 바나나와 귤 등이 인기였다.
할인점들이 자체 생산해 단가를 낮춘 자체브랜드(PB) 제품들은 ‘나홀로 호황’이었다. 이마트의 ‘이플러스’ 흰 우유는 매출이 16% 증가하며 이마트 전체 흰 우유 판매의 40%를 차지했고, 기획 화장지 역시 매출이 15% 신장했다. 롯데마트의 자체 브랜드 ‘와이즐렉’은 돼지고기와 계란의 경우 해당 품목 전체 매출의 15~30%를 차지하는 등 인기를 끌었다.
◆ 좋으면 산다
소비자들은 웰빙, 육아 용품 등의 구매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유통업체들이 발표한 히트상품 키워드에는 ‘웰빙’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옥션에 따르면 청국장이 다이어트와 변비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6만여건이 거래돼 올해 히트상품 4위에 올랐고, ‘새집 증후군’을 예방해준다는 산세베리아 화초(5만6,000여건)가 뒤를 이었다. 그밖에 반신욕조, 현미와 배아미, 비데 등 웰빙 상품이 식품과 생활가전 부문의 매출을 이끌었다. LG홈쇼핑에서는 황토를 이용한 미용팩 ‘황토 솔림욕’이 26만 세트가 팔려 최고 히트상품에 올랐고, 디앤샵에서는 건강식품 ‘대상 클로렐라’가 4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리며 식품 부문 매출신장률 1위에 올랐다.
아동ㆍ육아용품은 전통적으로 불황에 강한 제품. 홈플러스에 따르면 유아용 의류와 용품 매출은 지난해에 비해 각각 10%, 15.3% 늘어났다. 유아용품 중에서도 아토피 용품, 유기농 이유식, 산양 분유, 모유 수유용품 등 가격이 다소 비싸도 아이의 건강에 좋은 웰빙 제품의 인기가 특히 좋았다. 유아용품 매출이 지난 해에 비해 120% 증가한 인터파크에서도 100만원 이상의 고가 제대혈 보관 상품이 히트상품 목록에 4개나 올라 눈길을 끌었다. 옥션에서도 천 기저귀 등의 매출이 2년 만에 19배나 증가하는 등 호황을 구가했다.
◆ 히트상품에서 잊혀진 제품으로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급변하는 소비자의 입맛을 미처 따라잡지 못한 제품들은 판매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인라인 스케이트, 보졸레 누보, 색조 화장품 등은 지난 해까지 큰 인기를 끌었지만, 올해는 이름 값을 하지 못했다. 인라인 스케이트는 공급 과잉에다 추가 구매 수요가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점이, 색조화장품은 불황을 틈탄 저가 화장품의 급신장이 원인이었다. 지난 해에 비해 30% 이상 매출이 급감한 보졸레누보는 수입량 증가에 따른 희소성 감소와 칠레산 와인의 수입증가 등으로 판매가 주춤했다. 또 디지털 카메라와 카메라폰 등의 인기로 캠코더 판매가 지난해에 비해 70% 가까이 줄었고, DVD 플레이어 등은 일부 콤보 제품을 제외하고는 VTR을 시장 밖으로 몰아내고 있다.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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