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리시엔룽 싱가포르 총리가 지난달 29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자유무역협정(FTA)의 실질적 타결을 선언하자, 국내 언론들은 인구 5억명의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반겼다. 반면 주요 외신들은 같은 날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 더욱 주목하며 "동남아 지도자들이 국가번영을 위해 북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인도에 눈 돌릴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외환위기, 사스·조류독감 파동을 겪으며 침체됐던 아세안 국가들이 역내 통합은 물론 중국과 인도로 역외 무역을 확대하며 북미와 유럽에 버금가는 경제블록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내용이다.■ 아세안 10개국의 역동성은 성장률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아시아개발은행 불름버그뉴스 등에 따르면 올해 싱가포르는 8%대, 말레이시아는 7%대의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의 성장률도 5~6%대로 추정된다. 사스 등으로 지난해 성장률이 낮았던 만큼 기술적 반등요인도 반영됐겠지만 내년 성장률 예상까지 대부분 5%를 넘는 것을 보면, 성장률 3%대 추락을 걱정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니다.
■ 최근 전경련이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 95곳을 대상으로 부산 인천 광양 등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총체적 평가에서 5점 만점에 3.37점을 받는데 그쳤다. 조세인센티브, 관료제도, 지리적 위치, 생활여건 등에서 경쟁지역인 싱가포르(3.85) 홍콩(3.61) 상하이(3.39)에 모두 뒤졌다. 응답 기업의 82%는 우리나라의 경제자유구역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으며 정부정책의 시장친화 이미지에도 대부분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 사실 동남아라고 하면 지금도 국가 이미지나 경제력에서 우리보다 한수 아래로 보고 값싸게 골프관광이나 신혼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민간부문의 활력 저하와 정책 혼선으로 설설 기는 사이에 아세안국가들은 쑥쑥 크고 있다. 일찌감치 이 지역의 중요성을 인식한 중국과 일본은 앞 다퉈 러브콜을 보내며 2010년, 2020년의 장기비전을 함께 짜 왔다. 우리도 그 밥상에 숟가락을 놓는 작업을 서두르고는 있으나 권력이나 정치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그저 맥이 빠진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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