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 연장동의안의 국회 통과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정부 여당은 이른바 4대 개혁입법안과 민생법안들까지도 제쳐둔 채 처리를 서두르고 있다. 한나라당 역시 반대할 리가 없다.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정부와 파병 지지자들이 보여온 태도는 거짓과 억지, 무책임이다. 처음부터 잘못된 결정을 합리화하려 계속 무리수를 두어오다 이제 또 다시 파병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국회 이라크조사단의 보고란 것도 미군과 친미적인 쿠르드자치정부 인사 몇을 만나고 와서는 낸 것이다.‘국가이익’이라는 모호한 명분을 내세워 우리 젊은이들을 이라크에 보냈지만,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는 것은 오히려 적지 않은 ‘국가손실’이다. 월드컵 개최로 그나마 고양되었던 국가이미지가 이라크 파병 이후 다시 하락하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이라크 파병으로 인해 우리 국민과 국가가 당장 직면하게 된 위험은 감당키가 쉽지 않다. 우리가 알 카에다와 같은 국제테러집단들의 주요 표적이 되고, 아랍인들을 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얼마 전까지는 상상이나 했던가. ‘테러로부터의 안전’을 국가의 주요한 정책목표에 추가하게 생겼으니 이로 인한 국가적 손실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한국의 이미지 추락으로 인해 중동지역 교민들은 한글 간판을 내리고 중국인 행세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결국은 자업자득이다. 월드컵 때처럼 광화문에 모여서 외쳐댔던들 이라크 파병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때 보였던 그 열기만 있었어도 미국이 이라크 파병을 강요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이라크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쿠르드 자치지역은 정치적 분쟁의 소지를 안고 있는 화약고와 같은 곳이다. 주둔지를 잘못 잡아도 한 참 잘못 잡은 것이다. 이라크인들은 쿠르드족을 같은 국민이나 민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평화재건이라는 명분아래 도로와 다리를 건설해 준다면, 이라크인들은 한국이 쿠르드 독립을 지원한다고 여길 것이다. 이는 이라크인들은 물론, 아랍 전체를 적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행위다.
부시가 재선되자마자 한 일은 팔루자 학살이다. 그렇게 했어도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세우려는 미국의 전후계획은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내년 1월30일로 예정된 제헌의회 선거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저항세력들의 무장공격은 확산일로에 있고 이라크 국민들의 반미감정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미국은 정파 및 민족간의 갈등을 이용해 이라크를 분할 통치할 가능성이 크다. 이라크 전체에 친미정권을 수립하는 일이 여의치 않을 경우, 친미적 성향의 쿠르드족을 지렛대로 이용해 이라크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형태의 국가로 만들려 할 가능성이 높다. 세르비아계의 ‘스르프스카(Srpska) 공화국’ 처럼, 독립에 가까운 쿠르드족 자치공화국 건설을 허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될 경우 한국군은 정치적 분쟁과 내전의 한복판에 빠져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파병으로 우리가 얻은 국익이란 무엇인가. 그 동안 부시의 대북정책이 완화되지도, 북한핵문제가 해결되지도 않았다. 용산기지 이전비용을 미국이 조금이라도 분담하기로 약속하지도 않았다. 결국 우리가 얻은 국익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일부에서는 이라크 파병연장을 하지 않을 경우, 한미관계 악화를 우려한다. 그러나 필리핀이 이라크에서 철군했다고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됐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 헝가리 의회가 파병 연장안을 부결시켰다는 외신도 들려온다. 철군일정을 밝히지 않고 있는 나라는 호주와 한국뿐이다.
이제 이 정당하지 않은 전쟁에서 손을 털어야 한다. 지금도 늦지는 않았으나 어쩌면 마지막 기회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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