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12월9일 유엔총회가 만장일치로 고문금지선언을 채택했다. 제5차 유엔 범죄방지회의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12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선언의 요점은 어떤 국가나 그 밖의 권력주체도, 평화시든 전시나 비상사태 때든, 정보를 얻거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처벌·협박과 같은 수단을 써서 직접·간접으로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선언은 일종의 지침일 뿐 그 자체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문금지선언의 내용이 국제법적 지위를 얻게 된 것은 1984년 유엔총회가 채택한 고문금지조약에서다. 33개 조항으로 이뤄진 이 조약은 ‘공무 종사자 또는 그에 준하는 자가, 정보 취득이나 자백 획득을 위해 또는 인종편견에 기초해, 육체적·정신적으로 현저하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고문으로 규정하고, 이 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에서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게 했다. 고문을 보편적 반(反)인륜범죄로 규정한 것이다.
프랑스혁명 이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백의 증거능력을 인정했던 터라 자백을 강요하기 위한 갖가지 고문이 자행되었다. 그 시절 자백은 ‘증거의 여왕'으로 간주되었고, 피의자를 오로지 괴롭히기 위한 고문도 흔했다. 민주주의의 진전과 형사소송법의 개혁에 따라 자백의 증거능력이 부인되고 피의자나 피고인의 묵비권이 보장되면서, 오늘날 법적으로 고문을 허용하는 사회는 거의 없다. 대한민국도 헌법 제12조2항에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해 고문을 금지하고 묵비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제6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민주주의가 시동을 걸기 전까지 수사 과정에서 고문은 일상적으로 저질러졌고, 아직도 근절되지는 않은 듯하다. 지난 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날아온 역겨운 사진들은 고문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섬뜩하게 보여주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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