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4월 형법을 개정한 것은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느슨해진 북한 체제를 다잡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소련 등 공산국가들이 개방을 하면서 붕괴됐던 역사적 경험이 북한 지도부에 경계심을 갖게 했다고 볼 수 있다. 반국가·반민족 범죄 처벌을 강화한 것이 체제강화의 단적인 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관련 범죄조항을 보완하고 죄형법정주의를 확립해 개혁 개방에도 대비했다.◆ 체제 유지 조항 강화
우선 형법 1장 2절에서 ‘반국가 및 반민족 범죄에 대해서는 형사소추시효에 관계없이 형사책임을 지운다’고 명시함으로써 반체제 움직임에 대한 강한 처벌 의지를 드러냈다.
반국가 및 반민족 범죄 처벌 조항은 12개에서 14개로 늘어났고 처벌 강도 역시 세졌다. 특히 국가전복음모죄의 처벌대상에 무장폭동 뿐만 아니라 시위 및 습격 가담자를 추가했고, 형량도 5년 이상 10년 이하에서 5년 이상으로 상한을 폐지했다. 간첩죄는 7년 이상에서 10년 이상으로, 조국반역죄는 10년 이상에서 무기 이상으로 처벌을 강화했다.
또 선군(先軍)정치 원칙을 강조하기 위해 국방 관리질서 침해에 관한 장을 별도로 마련, 군 또는 국방과 관련된 범죄에 대한 처벌도 명문화했다. 특히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국방위원회의 결정·명령·지시를 제 때 집행하지 않을 경우 최고 5년 이상 8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개방에 따른 부작용을 없애기 위한 조항도 신설됐다. 적대방송 청취죄, 허위(소문) 날조 유포죄를 신설, 남쪽에 대한 동경심 확산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했다. 또 매춘 행위에 대해 2년 이하의 노동단련형으로 처벌하고 퇴폐음악 CD 수입에 대해서도 처벌조항을 마련했다.
◆ 경제 개방 대비 포석
경제관리질서 침해죄가 18개 조항에서 74개 조항으로 대폭 늘어난 것이 눈에 띈다. 기존의 포괄적이고 모호한 규정으로는 다양해진 경제범죄를 처벌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밀주죄, 전력사용질서 위반죄, 품질감독질서 위반죄 등이 신설된 것이 이를 반증한다.
외화관리 부분 강화도 특징적이다. 화폐 위조죄, 위조화폐 사용죄, 증권위조죄, 외화관리질서 위반죄 등이 신설됐다. 외국화폐 위조범 처벌이 최고 7년 이상에서 10년 이상으로 강화됐다. 또 외국기업의 투자에 대비해 탈세죄도 신설, 개방에 대비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 인권 측면의 변화
그 동안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온 ‘해당 조항이 없는 경우 가장 비슷한 조항에 따라 처벌한다’는 형법 10조가 삭제됐다. 대신 형법에 명시된 행위에만 형사책임을 부과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사법기관의 무분별한 법 적용을 견제하겠다는 원칙을 명확히 함으로써 인권보호를 내세운 미국 등의 견제를 예방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또 사법기관에 의한 사건의 과장이나 날조에 대한 처벌을 4년에서 10년 이상으로 강화하고 부당판결·판정죄, 법에 의하지 않은 실력행사죄 등을 신설,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근거도 마련했다.
경미한 범죄에 대해서는 교도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6개월에서 2년 동안 노동을 시키는 ‘노동단련형’을 신설한 것도 주목된다. 단순 탈북자에 대한 처벌 형량을 3년 이하 노동교화형에서 2년 이하 노동단련형으로 감형한 것도 평가할만하다는 지적이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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