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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쥐들의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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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쥐들의 외통

입력
2004.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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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뇌' 등으로 우리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란 책에는 동물들의 기이한 행동들이 소개돼 있다. ‘쥐들의 외통(外通)'도 그 중에 하나인데 장기 둘 때 외통수에 걸리면 꼼짝없이 지듯이 여러 마리의 쥐들이 꼬리가 서로 엉켜 꼼짝 못하고 죽음을 맞는 현상을 가리킨다. 쥐의 꼬리가 어떻게 엉키게 되는지, 쥐들은 그 엉킴에서 왜 벗어나지 못하는지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한꺼번에 외통에 걸려 죽은 쥐들이 서른 두 마리에 이른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1990년대 후반 번역 출판된 이 책을 읽고 당시 부동산 버블 붕괴로 '잃어버린 10년'의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던 일본 경제를 떠올렸었다. 그 시기 일본정부는 국내 소비확대가 불황 타개에 핵심이라고 보고 온갖 진작책을 썼지만 허사였다. 일본정부는 생각다 못해 전 국민에게 상품권을 지급해 봤으나 거의 소비증가로 연결되지 않았다. 모아 놓은 돈 좀 쓰면 나라 경제가 산다는데 점점 더 굳게 지갑을 닫아 위기를 키우는 모습이 꼭 쥐들의 외통 장면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장래를 믿지 못한 일본 사람들은 한푼이라도 생기면 은행으로 달려갔고 나이든 세대가 더 했다. 당시에는 일본경제가 그런 악순환에서 영영 못 벗어나는 것 아닌가 하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제조업 기술경쟁력을 바탕으로 10년을 가까스로 버텨낸 일본경제는 이제야 겨우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한번 디플레의 소용돌이에 감긴 경제가 거기서 빠져 나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말해 준다.

■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가 백약이 무효라니 쥐들의 외통 이야기가 다시 떠오른다. 어떤 이는 우리 국민들이 인플레에는 익숙해서 각자 어떻게 대처할지 행동요령을 잘 알고 있지만 디플레 현상은 처음 당하는 것이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무조건 지갑을 닫아버리기만 하고 달리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해 허둥대고 있다는 것이다. 돈 가진 사람들이 돈을 좀 쓰고 돈 있는 기업들이 투자를 하면 경제가 금방 살아난다는데 어리석게도 엉킨 꼬리를 못 풀어내는 쥐들처럼 속절없이 위기의 나락으로 떨어지는가.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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