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은 기업들이 외국인 자금을 끌어 모으기 위해 해외로 기업설명회를 떠난다. 그러나 늘어가는 외국인 지분에 좋아하기는커녕 노심초사하는 기업들이 한편 많아지고 있다. SK-소버린 사태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의 무서움을 깨달았기 때문이다.삼성물산은 외국계 펀드의 공격 목표 1순위로 꼽혀왔다. 삼성전자 지분 4%를 포함해 10여개 삼성 계열사들의 지분을 갖고 있는 실질적 지주회사인데도 대주주 지분이 적은 탓이다. 얼마 전까지 이 회사의 3대주주였던 영국계 헤르메스펀드는 최근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삼성물산에 적대적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세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물산의 지배구조 개선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달았다.
이 발언이 보도된 지 이틀 만에 헤르메스가 물산 지분 전량을 매각한 사실이 8일 확인(공시)됐다. 1년 전부터 물산 주식을 매입했던 헤르메스는 이번 매도로 35%의 수익률을 올리고 300억원가량의 차익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결국 주식을 계속 보유할 의사도 없으면서 인수합병을 거론, 주가를 인위적으로 올리려 했다는 그간의 의심이 더욱 짙어지게 됐다.
국내 기업들은 정부에 제도적 방어책을 마련해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경영권 탈취 공격을 시도하는 외국계 등의 의결권을 일시적으로 제한하는 ‘냉각기간제’를 두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국계 금융기관이나 일부 언론들은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국수주의적이고 보수적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헤르메스처럼 인수합병을 운운하며 치고 빠지는 행태가 외국계 투자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이른바 ‘선진 투자기법’이라면 우리 정부당국도 그에 걸맞은 ‘선진 대응책’을 하루 속히 마련해야 한다.
최진주 경제과학부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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