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주 감독의 새 영화 ’발레교습소’는 청춘영화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지만 희한하게도 그리 수줍은 분위기가 아니다. 주인공들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처음이지만 처음이 아닌 척, 서툴지만 서툴지 않은 척 한다. 하지만 처음임을 숨길 수 없는 장면이 있다. 이들이 나누는 첫 키스 장면이다. 숨 막힐 정도로 두근두근하는 그 분위기는 이들이 ‘처음’임을 숨길 수가 없다.뽀드득, 뽀드득 과장된 소리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가죽소파 위에서 첫 키스를 나누는 여주인공의 꽉 쥔 주먹, 어색함을 잊으려고 내뱉는 한마디 "냄새나 입에서", 당황한 남자주인공의 얼굴에 대고 여주인공이 덧붙이는 말 "귤 냄새…", 이들이 첫 경험을 하는 이 중요한 시점에 보고 있던 비디오 테이프는 장준환 감독의 엽기적인 영화 ‘지구를 지켜라’다. 그 어색하고 낯선 조합. 귀에 거슬리도록 계속되는 가죽 소파의 삐그덕 소리만이 이들의 긴장감을 대변해 준다.
통속적으로 말하는 "이들은 과연 어떤 관계였을까"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들의 풋풋함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해석은 매우 진지하고 분석적이다. "매우 심각했던 거 같은데. 별 관계가 없었으면 김민정이 집에 안 들어가고 방황했을 리가 있겠어?"
영화 ‘귀여워’에 대해, 여자 주인공 순이가 아버지 그리고 세 아들과 동시에 사랑을 나눈다는 내용을 언급하자 어떤 관객들은 궁금해 한다. 사실 순이가 그들 모두와 사랑을 나눈 것인지 아닌지는 매우 모호하다. 순이가 아버지 수로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명백하게 등장하지만, 나머지 세 아들과의 관계는 알듯 모를듯 하다. 큰 아들과는 그의 환상 속에서만 육체적인 관계를 맺고 있으며, 둘째 아들과는 "예전에 같이 놀던 사이"임을 드러내 주는 대사가 등장할 뿐이다. 셋째 아들과도 매우 미지근한 장면만이 등장할 뿐이다. 즉, 이들 관계를 정의하는 것은 철저하게 관객의 몫이다.
영화 ‘발레 교습소’에서 김민정과 윤계상이 진실로 심각한 관계였던 걸까, 또는 ‘귀여워’에서 순이가 네 남자 모두와 육체적인 관계를 맺은 건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발레 교습소’에서는 주인공들의 서툴고 진지한 청춘을, ‘귀여워’에서는 통속적인 세상과 동떨어진 낯선 문법으로 살아 가는 주인공을 느낄 수 있었다면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제작진의 판단과 달리 사소한 것에 매우 관심이 많은 게 사람들이다. 아직도 "그래서 김민정이랑 윤계상은 어디까지 간 거야?" "순이와 네 남자는 도대체 어떤 관계였던 거야?"는 어떤 사람들한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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