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4개월째 첨예하게 대립해온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을 8일 국회 행자위에서 표결로 통과시켜 다른 쟁점법안의 해법에 준거가 될지 주목된다. 쟁점 법안 중 퇴장과 몸싸움 등의 파행을 거치지 않고 처리된 것은 친일진상규명법이 처음.여야는 9월 각자의 친일법 개정안을 제출해 그 동안 13차례의 법안심사소위를 거치면서 타협안을 마련했고 이날 찬성 13, 반대 5, 기권 1로 표결 처리했다.
핵심 쟁점인 조사대상에서는 열린우리당이 크게 물러섰다. 우리당은 당초 ‘지위범’과 ‘행위범’을 함께 조사토록 했으나, 한나라당의 주장을 받아들여 ‘행위 중심’만 조사하도록 했다. 군은 소위, 경찰은 경시 등 고등문관 이상을 조사 없이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는 ‘지위 당연범’ 규정은 없어진 것이다. ‘친일 행위가 현저한 일반 군경’ 식의 광범위한 대상 범위도 ‘헌병 또는 경찰로서 고문 학대 등 탄압에 앞장 선 행위’ 등으로 구체화됐다.
민감한 문제였던 조선, 동아일보 등 언론창업주의 친일행위를 조사할지는 애매한 조항으로 절충했다. ‘문화 예술 언론 교육 학술 종교’ 분야의 친일 행위라는 문구를 ‘사회 문화기관이나 단체’로 뭉뚱그려 나중에 구체적인 대상을 선정할 때 논란이 벌어질 전망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조사위원회의 성격에서 한발 물러섰다. 한나라당은 ‘학술원 산하 기구’를 고집했으나 결국 표결 처리에는 응해 여당 안인 ‘대통령 직속기구’로 결론이 났다. 조사위 구성은 ‘국회 4인 선출, 대통령 3인 지명, 대법원장 3인 지명’으로 결정됐다.
논란을 빚었던 동행명령권은 여당 안대로 동행명령권은 부여하되 야당 주장을 받아들여 형사처벌은 없애고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또 야당 주장대로 대통령과 국회 보고 전까지 조사결과를 공개해서는 안되며 공개 시 처벌하는 조항도 유지됐다.
타협안이 여당 원안 보다는 조사범위가 축소되긴 했으나 군의 경우 중좌 이상만을 대상으로 삼은 현행 친일법보다는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 일제하 만주군 중위를 지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조사대상에 포함돼 정치적 논란이 재연될 소지는 여전하다.
우리당 천정배 대표는 이날 "17대 국회 첫 법안으로 준비했던 것으로 우리의 힘과 국민적 지지로 처리됐다"며 "개혁법안도 강력하고 끈질긴 인내심을 갖고 처리하겠다"고 자평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야당과의 타협 과정에서 원안이 크게 후퇴해 친일규명법의 취지가 퇴색했다"고 반발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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