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왜 문학을 하는가’이 막막한 물음에 우리시대 문인 71명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열화당 발행)는, 그 무모한 화두를 두고 한국일보가 2002년 3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문인들에게 구한 답을 모은 책이다.
이 책은, 객설로 들릴 지 모르나, 여러모로 기념비적이다. 우선 한국 출판사상 가장 화려한 필진이 주체로 참여해 만든 책이다. 당대의 시인 소설가들이, 위로 망팔(望八)의 원로부터 아래로 30대 신예에 이르는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글을 썼다. 영화로 치자면 역대 아카데미상 수상자들이 함께 만든 영화고, 노래 무대라면 가수왕들의 합동공연인 셈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필자의 얼굴과 이름에 기대 어영부영 느슨하게 조합된 것은 결코 아니다. ‘왜 문학을 하느냐’는 질문은 필자들에게는 자신의 존재론적 가치와 행위의 당위를 스스로의 글로 밝혀야 하는, 한편 설레면서도 어쩌면 무참할 수도 있는 부담이었을 것이다. 해서, 책에 실린 71편의 산문은 각자가 고독하게 선택하고 묵묵히 걸어 온 문학의 길을, 수십 년 저 편의 세월을, 마음의 심연을, 모진 기를 쓰며 넘고자 했던 제 앞의 혹은 뒤의 벽을 더듬는 고통의 기록이고, 스스로에 대한 찬가다.
만 30년 필력의 소설가 강석경은 이제서야 ‘문학은 궁극적으로 휴머니즘’이라고, 낮지만 단호하게 말하면서 그 언명에 도달하기까지 겪었던 신산한 상처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문학의 세계를 만났던, ‘그렇게 숭고하고 슬펐던’ 젊은 날의 어느 저녁을 말하는 노 시인 고은도 있고, ‘생의 덧없음을 부정하려고 정신을 뜀박질 시키며 육체성을 획득하려고 했지만 우리에겐 초월하지 못한 현실’이 있고, 그 벽 앞에서 경계를 넘고 싶던 시인 고형렬의 ‘나는 하나의 지우개처럼 닳아져 갈 것’이라는 절절한 각오도 들을 수 있다.
시인 김용택, 소설가 공지영 등은 문인으로 살아 온 삶을 수필처럼 썼고, 시인 김지하와 김혜순 등은 자신들의 시세계의 근원을 한 편의 산문시처럼 적었고, 소설가 김원일 등은 지금껏 자신을 지탱해 온 보이지 않는 ‘힘’을 사유의 문장으로 고백했다. ‘나는 왜…’의 화두풀이 20년의 경험을 토로하며, 끝내 ‘문학은 짜샤, 문학일 뿐이야!’ 라거나 ‘세상엔 의미 따윈 없어, 저기 꽃이 있을 뿐이야’ ‘문학이 던진 알쏭달쏭한 말을 끌어안고 또 얼마나 오랜 시간 씨름을 해야 할까’며 고뇌의 끈을 놓지 않는 소설가 구효서도 있다. 철학적·미학적 깊이의 문장과 의뭉스럽게 비껴서는 솜씨 좋은 농기(弄氣)의 문장, 비애와 분노에 절어 금새 핏물이 뚝뚝 들을 듯한 절규의 문장 등등을 이 책 한 권에서 만날 수 있다.
원고들을 달포 전에 넘겨받아 한편 한편을 곱씹어 읽은 문학평론가 김인환(고려대 교수)씨는 발문에서 ‘문학의 숙명, 원어(原語)의 맛을 전하지 못하는 역어(譯語)의 슬픈 운명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좌절을 통해서 다른 방식으로는 드러낼 수 없는 글의 맛이 우러난다…문학을 하는 것은 항상 가 닿지 못하는 곳에 있는 나를 찾아서 헤매는 여행이다’라고 했다. ‘가장 먼 여행은 귀향이다. 문학을 하는 마음은 먼 항구로 떠도는 마음이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갈 수 없으리.’
이 책 표지와 편집의 ‘지나친’ 소박함이 내용의 광휘를 가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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