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봉(49·본명 심민경)이 3년 만에 신곡을 낸다. 23일께 나올 10집 ‘사랑이 시가 되어’이다.1978년 대학가요제에 ‘그때 그 사람’으로 나와 이듬해 데뷔 앨범을 발표해, 정식 데뷔한지 25년. 10·26 사건 현장에 있어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는 방송금지로 활동이 발묶였고, 그 사이 두 번의 결혼 실패 등 가수로서 보낸 25년은 보통 뚝심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때 그 사람’‘사랑 밖엔 난 몰라’‘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비나리’ 같은 노래는 짓밟을수록 꼿꼿이 몸을 일으키는 잡초처럼 질기게 살아 남았다.
노래방에서 사람들은 레퍼토리가 궁색하면 주저없이 심수봉의 노래를 뽑는다. 덕분에 챙기는 저작권료는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넉넉하고, 미사리 라이브 카페에는 중학생이 찾아올 정도로 팬 층도 두텁다.
아무래도 그녀의 독특한 목소리가 사람의 혼을 빼는 모양이다. 한을 품은 듯 청승맞고 애잔하고 그러면서도 간드러진 음색, 말로는 설명할 길이 없는 목소리다. "호소력 있게 부르는 건 연습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목소리나 끼요? 그건 타고난 것 같아요. 중고제의 마지막 명창 심정순(1873-1940)이 할아버지인데, 그런 집안 내력도 무시할 수 없겠죠."
편의상 트로트가수로 분류되는 그녀가 요즘 재즈에 흠뻑 빠져 지낸다. 이혼하면서 헤어져 살아야 했던 여섯 살 딸이 커서 엄마 품으로 왔고, 그 딸이 어떻게 하면 잘 적응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2002년 두 모녀는 미국 뉴욕으로 떠났다. 1년6개월여 미국생활은 크게 만족스러울 정도다.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인 딸은 첼로를, 심수봉은 재즈를 붙잡았다.
이번 앨범에 선보이는 세 곡의 새 노래 중 ‘남자의 나라’는 국악의 다섯 음계와 재즈를 접목, 지금까지 발표한 노래 가운데서 가장 실험적이다.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제도를 비꼰 가사에 음악적으로 가장 든든한 지지자인 남편(김호경 MBC DMB추진팀 부장)마저 뜨끔했는지, 불만을 털어놓아요. 하지만 ‘그때 그 사람’에 견줄 만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거라고 평가해 주었어요."
‘이별 없는 사랑’은 가족과 떨어져 이국 땅에서 느낀 외로움을 담은 심수봉 특유의 청승맞은 노래고, ‘러브 오브 투나잇’은 경쾌한 스윙 리듬을 실었다.
젊은 작곡가 박근태에게 앨범 프로듀싱을 맡긴 것도 전에 없던 일."전에는 앨범을 하도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서 누구한테도 선물 한번 못했어요. 이번처럼 음반의 색깔이 통일되기는 처음입니다. 젊은 작곡가의 도움을 받으니 리메이크 곡들도 비트가 강렬해서 색다른 맛이 나네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백만 송이 장미’ 등 자신의 히트곡에는 록 비트를, 정미조의 ‘개여울’은 보사노바를 보탰다.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과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아리아 ‘남 몰래 흐르는 눈물’도 불렀다. "무리하지 않고 편안하게 목청을 쓰던 기존의 노래와는 달리 이번에는 파워를 실었다"고 설명한다. 28, 29일 서울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단독 콘서트도 가진다. "외로울 때 제게 힘을 주고 음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들에게 지금까지의 직무유기를 갚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삶에 우여곡절이 많았죠. 목소리에 한을 품고 있어서라고요? 누구나 삶에 우여곡절은 있기 마련이고, 유한한 삶을 산다는 것 자체가 슬픈 일 아닌가요. 이제는 그 충격이나 파장을 이겨낼 수 있는 음악인으로 살고 싶어요. 요즘이야말로 제 인생의 ‘봄날’이죠."
글 문향란기자 iami@hk.co.kr
사진 왕태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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