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해가 기울고 있다. 되돌아보면 지난 한해 온 국민의 관심 뿐 아니라 ‘국론’까지 하나로 모은 사건은 현재도 미래의 일도 아닌 까마득한 고대사가 아니었나 싶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신들의 변방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노골화와 이에 대한 강경 대응으로 치닫던 대립은 구두양해라는 어정쩡한 형태로 일단은 봉합되었다. 일본의 지속적인 근대사 왜곡에 이어 고대사를 통째로 바꾸려는 중국의 시도를 보면 어이가 없다. 한편으로 이것이 시작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금 지배하는 영토이므로 이를 지키고 정당화하기 위해, 나아가 미래의 화근을 제거하기 위해 명백한 역사까지 바꾸겠다는 시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하지만 이 지역이 과거 우리 땅이었으니 비키라고 목청을 높이거나, 회복해야 할 고토라고 격한 감정을 토로하는 것 역시 감정적 민족주의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이런 대응은 수렁에 빠진 바퀴를 끌어내기보다는 진흙탕만 튀기며, 종국에는 옳고 그름을 가리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구나 자신의 과거와 역사에 대해 당위성을 부여하고 정당화하려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타자를 짓밟고 사실을 뒤집으려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당위 속에서 우리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우선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잊어버리는, 예방하기보다는 문제가 불거져야 본격적으로, 더러는 필요 이상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8년 여 전부터 시작돼 막대한 인력과 예산이 투여돼 왔고 조직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런 사실은 중국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공공연한 비밀이다. 최근 쏟아지는 관심과 수많은 대응책을 보며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의 기저에는 한국·중국·일본 동북아 3국이 서로를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재한 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돌이켜보면 서로의 경제적 필요나 정치적 사안에 따라, 선택적으로만 교류하고 감성적으로 기대하고 대응해 오지 않았나 싶다. 수천년 간 관계를 맺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역사와 전통, 정체성을 이해하고 공유하며 존중하려는 노력과 자세가 부족했다.
물론 불행했던 근대사와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반성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훨씬 더 광대한 지역과 많은 나라가 모여있고 복잡다단한 역사적 부침과 격렬한 대립이 있었던 유럽은, 오랜 노력 끝에 하나의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이제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려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수많은 이해와 갈등을 조정하고, 인내와 신뢰를 바탕으로 유럽의 가치와 목표에 합의하는 모습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소모성 논쟁을 딛고 동북아 3국이 서로 인정하고 공유할 수 있는 동아시아적 가치, 더 나아가 아시아적 가치를 찾는 일에 눈을 떠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나 외교가 아닌 문화·예술·학술 분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서 튼튼한 초석을 먼저 놓아야 한다. 이른바 동북아시대는 어느 한 나라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 함께 이루어야 할 과제이며 동시에 우리가 같이 가야만 할 길이기 때문이다.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국제문화포럼 상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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