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당선, 이달부터 ‘공식업무’를 시작한 정화(22·사진·국문4)씨는 첫 여학생 회장이라는 점에서, 또 3년 만의 운동권출신 회장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대 운동권 총학생회장에 대한 관심은 역설적으로 변화한 대학가 이념지평의 반영이다. 그러나 그는 기성언론과의 첫 인터뷰에서 조급하게 운동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대학문화가 이념적 담론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의 얘기는 좌우 이념보다는 합리적, 현실적 중도의 길을 모색하는 경향이 높아지는 요즘 대학가의 경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관련기사 7면"학생운동에도 ‘제3의 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운동권이니, 비운동권이니 하는 이분법적 구분은 이제 무의미하지요."
7일 서울대 교정에서 만난 정화씨는 "처음부터 너무 많은 관심을 받는 것 같아 쑥스럽다"며 "운동이란 것이 별 게 아니라 학우들이 실제 삶 속에서 맞부딪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운동권 중에서도 범민중민주(PD) 계열로 분류되는 그는 "거대 정치담론에 매몰된 기존 운동권적 시각에서 탈피, 학내문제를 아우르는 다양한 정책들을 고르게 제시한 게 많은 지지를 받은 원인일 것"이라고 당선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했다.
실제로 그의 공약들은 그가 속한 운동권이 주장해 온 ‘반 신자유주의 투쟁’이나 ‘비정규직 철폐’보다도 ‘수업권’에 그 강조점이 두어졌다. 학내 일각에서 이런 정책과 수려한 외모를 두고 언제 ‘커밍아웃’ 할지 모르는 ‘위장 운동권’이라는 의심의 시선을 보냈을 정도였다.
많은 이들이 서울대 최초의 여성 총학생회장이라는 타이틀에서 학생운동을 발판으로 한 미래의 여성 정치인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못을 박았다. "정치판에 들어가면 더 많은 걸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말들을 합니다. 하지만 386 선배들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면 실제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기대를 버렸기 때문에 정계로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가부장적 사회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2년 전부터 ‘류정화’에서 아예 성을 뺀 이름을 쓰는 그는 그래서 ‘여성’을 강조하는 시각에 특히 불편해했다. "크게 다른 것은 없을 겁니다. 다만 여학우들이 더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캠퍼스를 만드는데 좀더 신경을 쓰겠지요."
어머니한테서 제발 영어공부 좀 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는 그는 내년 ‘5학년’으로 대학생활을 마무리해야 한다. "때 맞춰 졸업하고, 취업준비하고, 취직하고… 그렇게만 살면 너무 팍팍할 것 같아요. 앞으로 1년간 총학생회를 꾸려가면서 진로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고민해 볼 계획입니다."
글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사진 왕태석기자 king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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