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최고의 수문장을 가리자." 8일(포항 19시)과 12일(수원 15시) 홈 앤드 어웨이 경기로 열리는 K리그 챔피언 결정전에서 포항의 김병지(34)와 수원 이운재(31)가 다시 한번 마주 선다. 국내 최고 골키퍼들의 숙명적인 라이벌 대결이다.두 사람처럼 질긴 인연이 또 있을까. 지난 10년간 둘은 국가대표 문지기 자리를 놓고 오직 승자 아니면 패자여야 했다. 한쪽이 웃으면 다른 한쪽은 쓰린 가슴을 부여잡고 고개를 떨궈야 했다.
먼저 두각을 나타낸 쪽은 이운재였다. 그는 94년 미국 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출전했고, 96년에는 수원의 창단 멤버로 프로에 데뷔했다. 그러나 간염 판정을 받아 선수생활에 위기를 맞았다. 2년만에 병마를 훌훌 털어냈지만 그 이후 늘 김병지의 그늘에 가린 2인자 신세였다. 반면 무명에 가깝던 김병지는 93년 현대의 주전을 꿰차기 시작하더니 95년 코리아컵 때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후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승승 장구를 거듭했다. 그런 김병지를 이운재는 TV로 지켜보며 절치부심해야 했다.
둘의 운명을 뒤바꿔 놓은 것은 2002 한일 월드컵이었다. 대표팀 붙박이 골키퍼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김병지는 한 순간에 추락했다. 2001년 홍콩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에서 하프라인까지 공을 몰고 나갔다 볼을 빼앗기는 바람에 거스 히딩크 대표팀 감독의 눈 밖에 나고 만 것.
라이벌의 불행은 이운재에게 행운으로 다가왔다. 이운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월드컵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골키퍼로 거듭났다. 김병지는 팬들의 뇌리에서 사라져 갔다. 이제 다시 결전의 무대는 챔피언 결정전으로 옮겨졌다. 둘은 K리그 플레이오프에서 몸을 던지며 노장의 진가를 발휘했다. 김병지는 올해 최고의 골키퍼로 불린 울산 서동명을 눌렀고, 이운재는 대표팀 세대교체를 외치던 김영광(전남)을 꺾었다.
김병지는 팀의 12년만의 우승과 함께 잃어버린 영광을 되찾겠다고 벼른다. 이운재는 5년만의 팀 우승에 이어 1인자 자리도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최고는 바로 나"라는 둘의 자존심 대결이 벌써부터 치열하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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