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머리 때문에 나한테 전두환 전 대통령 역 준 건 아니잖아요? 그러면 나 말고 오히려 적임자들이 많아, 안 그래요?"내년 1월 22일 첫 방영되는 MBC 정치드라마 ‘제5공화국’(극본 유정수·연출 임태우)에서 주인공인 전두환 역을 맡은 탤런트 이덕화씨는 근래 자신에게 쏠리고 있는 별난 관심이 영 마뜩지 않다. 10년째 가발광고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이번엔 가발을 벗을 것인가?’를 놓고 호사가들이 벌써부터 쑥덕공론을 벌이고 있는 탓이다.
"숀 코너리나 잭 니컬슨 같은 외국 배우들은 멀쩡하게 활동 잘만 하는데, 우린 머리만 빠지면 할아버지·할머니 역 맡기니까 가발을 쓰지요. 드라마만 잘 된다면 100번이라도 벗을 수 있어요."
그는 외모뿐 아니라, 다른 방면에서도 전두환 전 대통령을 표현할 준비가 돼있는 듯했다. "오늘 처음 연습 했는데, 경상도 사투리 안 쓴다고 했어요. 박정희 대통령 억양처럼 들릴 수 있으니까. 대신 표준말을 경상도 사투리 억양과 리듬으로 해보려고…"
진짜 걱정은 따로 있다. "주변에서 ‘야 너 그거 안하면 밥 굶냐. 뭐 하러 손가락질 받을 일을 하냐’고 그래요. 만약 그가 100년 전 인물이라면 배역으로는 기막히게 좋지요. 악역 중에 악역이고 카리스마와 힘도 있고. 그런데 살아있는 실존 인물이니 걱정입니다. 그 사람 때문에 피해본 당사자나 유가족 혹은 심리적으로라도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어요. 그저 그런 분들께 드라마로만 봐주시라고 양해를 구하는 거죠."
이덕화 자신의 기억 속에서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인상은 어둡고 부정적이다. "내가 TBC 공채 출신인데, 1980년에 TBC를 강제로 KBS와 통폐합시켰을 땐 그야말로 ‘죽일 놈’이었어요. 80년대 중반엔 국방부장관 관사에서 그의 생일잔치 사회도 봤는데 ‘안녕하세요 이덕화예요~’. 이래야 하는데 웬걸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봤어요. 무서울 때 아니에요."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얼마 전 읽었다는 책의 글귀로 대신했다. " ‘경제 어렵다고 그때 그립다고 하는 사람들 있는데 노예도 밥은 먹여 준다’고 썼어요. 내가 안 굶어봐서 그런지 몰라도 하루 두 끼만 먹더라도 지금이 더 낫지 않아요?"
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를 지원하는 걸 시작으로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경기도 광명 갑에 출마해 낙선하는 등 5, 6년 계속됐던 정치행위에 대한 부담은 그가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친구 아버지니까 유세 도와줬을 뿐, 앞장서서 정치할 계획은 없었어요. 그리고 DJ 신체비하 관련발언은 잘 못 알려진 것이에요. 어쨌든 ‘잃어버린 시간들’이죠. 연기자로서 가장 왕성히 활동해야 했을 황금기를 놓쳐버렸어요."
70년대 하이틴 영화를 휩쓴 청춘 스타, 80년대 가요 프로그램 사회자와 CF모델, 배우로 당대를 풍미했던 이덕화. 93년 영화 ‘살어리랏다’로 제18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도 받았고, 당시로서는 최고인 회당 200만원의 출연료를 받았던 사극 ‘한명회’로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을 때가 그에게는 정점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표현처럼 ‘딴 짓, 괜한 짓(PD연합회와의 소송)’ 하느라 연기를 버려둔 대가는 컸다. "그 10년간 ‘악극’이랑 ‘가발 광고’하면서 버텼어요. 그러다 ‘여인천하’에서 강수연 상대역을 했는데, 거기 나오는 남자들은 전부 ‘삼식이’였어요. 바보처럼 나왔죠. 그런 다음에 ‘무인시대’에 금강야차 역에 잔뜩 기대를 걸고 나갔는데, 웬걸 뒤에서 도끼질만 죽어라 6개월 하고 주인공 될 때 되니까 곧 죽더라고. 이 나이에 아저씨, 매형, 삼촌, 아빠나 시키고 옛날 박수소리는 점점 잊혀져 가는 것 같아서 연기 안 하려고 마음 먹은 적도 많았어요. 그래서 더 이젠 마무리 잘 하고 싶어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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