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강명석의 TV홀릭] MBC ‘12월의 열대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강명석의 TV홀릭] MBC ‘12월의 열대야’

입력
2004.12.07 00:00
0 0

MBC ‘12월의 열대야’를 보면 답답해질 때가 있다. 섬마을 출신으로 서울 유수의 종합병원 원장 아들 지환(신성우)과 결혼한 영심(엄정화)이 사는 집을 볼 때 그렇다. 이 집은 거실, 식당 어딜 가든 여백 하나 없이 화려한 소품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영심은 그 중 어느 하나도 맘대로 쓸 수 없다. 결혼생활 10년이 지나도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한 그녀는 단 한순간도 거실 소파에 편안히 앉아 보거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심지어 아이들이 지환과 함께 놀이를 할 때도, 그녀는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문지방에서 그것을 지켜본다. 가뜩이나 눈 쉴 곳 없이 꽉 찬 집에서 드라마의 주인공이 계속 주변만을 맴돌며 가족들의 눈치를 보는 모습은 그리 보기 편한 것이 아니다.그래서 영심이 정우(김남진)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단순한 연애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삶의 주변만을 맴돌았던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녀는 정우에게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주고, 정우의 도움을 받아 운전면허시험을 치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그로 인해 화면의 주변이 아닌 중심에서의 삶을 찾는다. ‘12월의 열대야’에서, 여성의 행복은 ‘신데렐라 스토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 신데렐라는 됐으되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영심은 아이러니 하게도 가난한 청년을 만나 자신이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는 온전한 인격체라는 것을 안다.

과연 영심의 ‘불륜’과 결혼 뒤에도 외로울 때마다 아내대신 ‘소울메이트’를 만나는 지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단지 지환은 남자이고, 상대적으로 ‘가진 자’라는 것밖에 없다. 그래서 지환은 자신도 소울메이트 있으면 안되냐는 영심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대신 정우를 만나고 온 영심에게 이렇게 말할 뿐이다. "당신 가정주부야. 애들 엄마고, 아버님 어머님 며느리고, 남편이 있는 유부녀야 유부녀!" 가족의 중심에 있는 남자인 지환은 모든 것을 가지지만, 자신의 아내는 ‘누구의 무엇’일 수밖에 없다.

‘12월의 열대야’는 근본적으로 비극이다. 불륜과 불치병이 등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시 성 바깥을 바라보게 된 신데렐라와 그녀를 하인처럼 대하지만 성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용납하지 못하는 성 주인의 소유욕이 부딪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오히려 코믹하게 그리며 ‘꽉찬 집’에 갇힌 주부의 답답한 일상을 묘사, 왜 그녀가 정우에게 다가설 수밖에 없었는지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최고의 미덕이다.

그래서 ‘12월의 열대야’는 불륜 드라마라기보다는 여성, 혹은 주부 드라마다. 주부가 불륜을 하는 드라마는 많았지만, 불륜을 하는 여성에 관한 드라마는 없었기 때문이다. 집안 어디서도 자신의 가치를 찾지 못한 여성, 그리고 그 여성에게 갑자기 다가온 뜨거운 태양같은 사랑. ‘12월의 열대야’라는 아이러니한 제목은 거기서 나온 것이 아닐까.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